팀의 첫 페어웰과 에너지 레벨에 대하여
처음 빌딩한 팀은 밸런스가 매우 좋았다.
우리 회사에는 직급이 없이 ‘(닉네임)님'으로 호칭하지만 굳이 연차로 따지자면 사원, 대리, 과장, 팀장이 고루 포진되어 있어서 퍼포먼스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균형 잡힌, 그야말로 이상적인 팀이었다.
처음 팀이 갖춰지기 시작했을 때엔 기존 팀원과 새 팀원 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만 사소한 갈등은 대화로 풀어내며 나름대로 안정적인 시기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우리 팀이 신사업 기획을 맡게 되면서 부터인데, 돌이켜보면 참 회사 다니기 싫은 시기였다. 하고 싶지 않은 스포츠웨어 분야의 사업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본래 하던 핵심 업무도 문제 없이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팀원들도 미팅마다 계속 바뀌는 사업 방향과 각종 피드백에 힘들어했다. 나는 맡은 일도 많은데 관심 없는 분야의 신사업도 추진해야 했으며 팀원들의 눈치를 보며 주기적인 컴플레인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못 참겠어서 대표님께 퇴사를 질렀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 대표님은 뭐가 하고싶냐 물으셨고, 나는 여성 기성복 브랜드가 하고 싶다고 했다. 큰 고민 없이 미팅 자리에서 바로 컨펌을 해주신 덕에 우리는 얼떨결에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게 됐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내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은 새 브랜드의 첫 시즌이 참패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팀원들이 한 껏 우울하고 예민해진 내 눈치를 봐야 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큰 실패로 인해 당황스러울만큼 갈피를 못 잡는 시기를 맞이했다. 심지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별안간 팀원 두 명이 순차적으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새로운 브랜드의 실패도 뼈 아팠지만, 팀의 중추 역할을 해주던 능력자들의 연이은 퇴사가 가장 슬펐다. 두 번째 고난 퍼레이드였다.
리더의 첫 페어웰(Farewell)
그 당시 내 리더십은 인본주의로, 경청과 존중이 핵심 가치였다.
리더십 테스트를 받았을 때에도 팀원 개인보다 팀의 성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었는데, 능력 있는 팀원들의 퇴사를 연이어 경험하며 그들의 성장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드니까 그제서야 그 평가가 크게 와닿았다.
1on1 미팅 때 두 팀원이 공통적으로 말한 퇴사 사유는 ‘팀과 리더는 좋지만, 커리어적으로 더 큰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팀이 성장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신사업 실패로 혼란스러운 그 시기에 하필 좋은 제안이 찾아왔고 그들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면담 후에도 딱히 설득할만한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수 없이 팀의 첫 물갈이를 맞이했다.
“작별이 아쉽지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첫 팀의 성숙한 페어웰(farewell)이었다. 우리는 서로 감사 인사를 나누며 작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동안 회사와 팀에 기여한 팀원을 ‘잘' 보내주는 것도 존중과 배려이며, 건강한 조직 문화의 중요한 일부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머지 않아 인재상에 걸맞는 후임이 채용되었고, 전임자들은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했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결말이다.
회사 성장과 팀 에너지 레벨의 상관관계
팀 리더는 성과도 내야 하고, 팀의 분위기도 살펴야 하며, 병목과 맹점은 없는지도 샅샅이 체크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늘 어렵지만서도 팀에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고 에너지 레벨이 높을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세나 근속 기간에 따라 팀의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면서 표면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었던 회사들의 공통적인 성장세와 팀의 분위기를 간단히 3단계로 나눠 정리했다. (*주의 : 매우 주관적인 경험에 의함.)
• 1단계 - 회사의 성장 초기 : 새로운 직원의 유입 많음. 직원의 사기와 에너지 레벨 높음. 복지와 처우가 좋지 않지만 꿈과 희망으로 이겨냄. 으쌰으쌰!
• 2단계 - 가파른 성장세 : 본격적으로 매출이 가파르게 성장하며 업무량이 급증. 시간 외 근무 발생. 직원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기 시작함. 직원의 이탈 발생. 복지와 처우가 개선됨.
• 3단계 - 성장이 고점에 도달 : 매출 규모가 안정권에 접어들며 성장세가 줄어듬. 위기감을 느낀 경영진의 피드백이 잦아짐. 직원의 사기와 에너지 레벨이 낮아짐. 직원 이탈 다수 발생. 복지와 처우가 줄어듬.
주니어 시절에 1~2단계 사이의 회사를 다수 경험해 본 덕분에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실무자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두 팀원이 퇴사를 고했던 그 당시에 우리 회사도 2단계에 있었으며,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 팀 전체가 야근을 하며 실무를 바삐 쳐내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피로한 시기여서 과부하 걸리기 전에 달리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새롭고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업무 자율성을 높이고 팀원 각자의 자기계발을 지원하는 것에 더욱 치중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쉬어가는 시기를 갖자는 판단으로 정한 방향이었는데, 한창 성장에 목말라있던 능력자들에겐 방향성도 명확하지 않고 속도도 빠르지 않은 당시 상황이 마뜩잖았다보다.
성장 단계별로 고려해야 할 것들
이처럼 팀원마다 일하는 방식, 역량, 성장 욕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최선의 판단을 하면 된다. 칼로 무 자르듯 정답을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단계별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있다. (*다시 주의 : 매우 주관적인 경험에서 작성됨.)
• 1단계 - 회사의 성장 초기 : 결속과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 회사와 개인의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주는 것이 좋고,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작은 포상을 약속하는 것도 좋은 동기가 된다. 이 단계에 합류하는 인재들은 당장의 이득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와 본인의 성장에 큰 비중을 두는 유형이 많다. 피봇 등 큰 이슈가 발생한다면 구성원들에게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 완전한 솔직함(Radical Candor ; 킴 스콧 저)이 큰 힘을 발휘할 때이다.
• 2단계 - 가파른 성장세 : 매출이 성장하며 동시에 모든 부서에 일이 미친듯이 증식(?)하는 시기이다. 업무만 늘어나면 좋을텐데 온갖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초반에는 미봉책으로 막기 급급하다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안하기 시작하며 자잘한 업무 매뉴얼이 생기고 관계자 협의에 투입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일부 대표들은 이 시기에 사업 확장을 시도하기도 한다. 대내외적으로 정신 없지만 이 시기에도 팀 리더는 매일 발생하는 이슈를 기민하게 발견하고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업무가 과중해지면 적절한 포상, 속도 조절, 병목 해소, 복지 도입 등으로 에너지를 영끌(?)할 수도 있다. 힘들지만 성장이 눈에 보이니 이 또한 즐거운 때이다.
• 3단계 - 성장이 고점에 도달 : 1, 2단계를 지나 이 시점이 되면 리더십에 대한 성찰과 개선보다 스트레스 관리와 마음챙김이 더 중요해진다. 성장이 정체되고 팀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면 타개하기도 버티기도 쉽지 않다. 위로는 임원의 피드백이, 아래로는 팀원들의 권태감에 이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이 때에는 회고와 소통을 통해 그동안 달려오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을 돌아보고 구멍난 곳이 있으면 단단히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 리더 스스로의 심신도 꼭 챙기시길 빈다.
어느덧 우리 회사는 3단계에 진입했고, 그동안 바삐 달려온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속에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작별은 매번 어렵고 그저 겸허한 마음으로 과정 속에서 깨닫고 배울 뿐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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