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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아빠의 병은 아빠의 몸 하나하나를 고장내기 시작했다.
아빠의 병을 알게 된 지 약 5년. 아빠는 시력을 조금씩 잃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시력에는 이상이 없으나 점점 눈이 어두워졌다.
초기에는 시야를 정확히 가로로 반을 나눴을 때, 그 아래 부분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 같은 사실을 의사에게 알리고 시신경 검사를 했다. 하지만 시신경과 시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쁜 아빠의 뇌가 보는 것도 온전히 하지 못하게 건드리고 있나 보다.
그렇게 "잘 안 보여"가 "안 보여"가 되고 아빠 시야의 어둠은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갔다.
지금은 한쪽 눈의 아주 작은 범위만 시력이 남아있다. 그 마저도 온전치 않지만.
이 때문인지 두 눈은 양쪽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초점이 틀어졌다.
아빠가 시력을 잃고 가장 슬픈 것은 우습게도 아빠와 카톡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 역시 아빠와의 카톡을 저장해 두지 않은 것.
내 하루를 참 궁금해하던 다정한 아빠는 아침이면 '출근 잘했니?' 점심이면 '점심 잘 먹었니?' 저녁이면 '집에 잘 들어왔니?' '보고 싶다 우리 딸'… 소소한 카톡을 자주 보내던 사람이다.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했고 어디서 배운 어설픈 신조어를 쓰다 나에게 놀림받기도 했다. 영상통화를 하면 서로 엽기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카톡뿐만일까. 아빠는 아빠 의지대로 우리에게 전화를 거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휴대폰에서 메뉴를 찾아 우리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찾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니 전화를 받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어버려서 우리는 아빠와 통화를 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수밖에 없어졌다.
아빠는 이제 우리가 궁금하고, 우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하염없이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휴대폰에 아빠 번호가 있지만, 쓸 수 있는 일이 없다.
두발로 걷던 아빠는 한 번씩 넘어지기 시작하더니 손을 잡아줘야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하게 됐고, 이제는 지팡이마저 필요가 없어졌다.
휠체어에 앉아야 했으니까.
우리가 휠체어에 앉혀주면 아빠는 방에서 약 2미터만 움직일 수 있다. 아빠 방에서 거실로 가는 길에 세 개의 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딱 그 세 개의 계단은 아빠 혼자는 물론 휠체어로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도움 없이는 아예 움직일 수가 없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휠체어에 앉는 그 짧은 동선도 아빠 힘만으로 하다가는 사고가 벌어진다. 하지만 아빠는 매번 우리를 불러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미안한지 자꾸만 혼자 움직이려 한다. 그 때문에 아빠는 너무 많이 넘어져 온몸이 멍투성이에 갈비뼈도 여러 대를 부쉈다. 여기저기 부딪혀 피를 보는 일도 잦다.
휠체어에 아빠를 앉히고 밖을 산책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다.
밖은 온갖 곳에 휠체어로 넘을 수 없는 턱이 있고 장애물이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세상이 얼마나 불친절한지 전에는 몰랐다.
아빠가 집에 혼자 있게 될 때 아빠는 그 2미터 반경 안에서 고립되어 가만히 있는다. 정말 '가만히'.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햇볕이 쏟아지고, 강아지가 오랜만에 보는 아빠를 보고 좋아서 헥헥댈테다. 텃밭에 엄마가 잘 키워놓은 파며 고추도 만져볼 수 있겠지. 하지만 걸을 수 없는 아빠는 그럴 수가 없다.
아빠는 온전한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됐다.
초기, 젓가락질을 어려워해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져 아빠가 숟가락으로 밥을 퍼놓으면 우리가 반찬을 얹어주곤 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마저도 어려워졌고, 이제는 아예 밥을 떠먹여 줘야 한다.
밥을 먹다가 뿜는 일은 더 잦아졌고 점점 사레가 들리기 시작했다. 식사 중 아빠의 등을 두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그리고 아빠는 급기야 식사를 하다가 정신을 잠깐씩 잃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국숫집에서였다.
아주 초기 아빠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당시 국수를 먹다가 사레에 들렸고 이는 좀처럼 멎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의 얼굴은 점점 파리해졌고 눈이 뒤집어졌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아빠의 등을 두드렸고 식당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아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빠가 한 번씩 정신을 잃는 일은 또 잦아졌다. 이런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참 잔인하다.
당연히 우리 가족은 식당을 가지 못하게 됐다.
아빠가 큰소리로 기침을 할까, 사레에 심하게 들려 또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등을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정신을 또 놓아버리진 않을까. 식당 손님들 눈치 보며 가던 것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아빠의 고향에는 아빠가 참 좋아하는 짜장면 집이 있다. 한 번씩 그곳이 그렇게 생각이 나나보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아빠를 차에 태워 그곳에 가 짜장면을 포장하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 차를 주차해두고 차 안에서 짜장면을 먹는다. 그 좁은 곳에서 전쟁을 치르며.
우리 가족이 바람을 쐬러 나가며 휴게소에 들를 땐 아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고 나와, 포장해온 밥을 차에서 아빠에게 먹여준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차에 앉아 멍하게 기다리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면 맛을 느낄 새도 없다.
아빠는 사발째 들고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면 소원이 없겠다 했었다.
나는 좋은 식당에 가면 그렇게 아빠를 데리고 가서 먹이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나 소박하다.
아빠의 말투는 점점 어눌해졌다. 지금은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운 정도가 되어서, 아빠와 이야기를 할 때엔 네다섯 번은 다시 물어봐야 한다. 그마저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아빠는 점점 말을 하기 꺼려했다. 한마디를 하는 것조차 굉장히 힘이 들기도 했고,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니 아예 말을 아껴버리는 듯했다.
나는 그나마 가족 중에 아빠 말을 잘 알아듣는 편이다. 아빠에게 가능한 다시 물어보지 않기 위해, 말을 하는 중에도 아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 배경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아빠는 나를 불러두고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그날도 아빠가 한밤 중 나를 방으로 불렀다.
"정아. 아빠는 한 마디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어.
아빠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땐 꼭 알아들어줘야 해."
이 두 마디를 오랜 시간 힘겹게 이어 뱉었다.
아빠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아빠의 마음을 한 번에 이해했다.
얘기했었지만 아빠와 나는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놀랍도록 닮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때에, 아빠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저런 걸로 고민할 땐 아빠도 같은 고민 한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비슷한 감정을 비슷한 때에 공유한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바로 가장 마지막 순간, 아빠의 마지막 이야기를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
아빠의 말을 점점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서 번뜩인 이 생각은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언젠가 아빠가 떠나는 날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말을 못 알아들을 것만 같아서였다.
아빠가 가슴에 한을 안고 떠나지 않을까, 나도 그 한마디가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고 듣고 싶어 가슴에 사무쳐 평생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이 뿐일까.
아빠는 심지어 목을 겨누는 것, 숨을 쉬는 것, 잠자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모든 것이 고장 났다.
아빠가 온전히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아기처럼 우리의 손길이 하나부터 열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치는 때가 온다.
또 이런 시련을 준 세상이 원망스러운 거다.
어느 날 오빠와 나는 집에 들렀다가 기차역에 가려 지하철을 탔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고 괴롭다며 울었고, 오빠도 눈물을 쏟았다.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을 신경 쓰기엔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오빠는 울며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아기일 때 맨날 넘어지고 엎어트리고 사고 쳐도 아빠가 우리 다 보살펴줬잖아.
이제 우리가 아빠한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때가 온 거야"
"우리는 지금 아빠와 이별하는 준비를 하는 거라 생각하자"
이별하는 준비…
이 슬픈 말이 왜 위로가 됐을까.
아빠는 하나씩 고장이 났고, 우리 가족은 아주 조금씩 서로 단단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