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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Oct 27. 2020

아빠 기억하기 : 부러움

#7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부러움;
욕망의 대상을 본인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괴로운 감정



어렸을 땐 최신 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고, 더 크면서는 나보다 좋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직장인이 되어서는 높은 연봉을 받는 누군가가, 또는 좋은 차를 타는 상사가 부럽기도 했다. (근래에는 연금복권 1, 2등에 동시에 당첨된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내 부러움의 대상은 대체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재물, 권력, 명예를 가진 자였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인생 다 산 사람 같지만) 재물, 권력, 명예… 이 모든 것이 우습고 의미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요즘 내 부러움의 대상은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의 모습이다.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친구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기에, 친구 아버지가 축하 편지를 읽어주셨다. 열심히 키운 딸을 믿음직한 사위에게 보내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의.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에 친구 아버지는 일어나 친구를 꼭 안아주셨다.


최근 가장 부러웠던 모습이다.

친구가 아버지와 입장하는 순간부터, 나는 부러워 눈물이 났다.


친구들의 결혼식이 잦아지면서면서,

온갖 생각과 상상을 달고 사는 나는 아빠의 소뇌위축증 초기에 이런 상상을 해봤었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아빠랑 손 잡고 입장할 때 넘어지면 어떡하지?'

'아빠가 조용한 식장에서 기침을 못 멈추면?'

'목소리 조절이 안 되는 아빠가 큰 소리를 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아빠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점점 변해갔다.

'아빠 손 잡고 입장할 수 있을까?'

'휠체어로라도 아빠랑 같이 입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은,

'내 결혼식에 아빠가 있을까...?'




누군가의 일상을 볼 때도 부러움에 진다.


자기 일상을 브이로그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친구가 있다. 새 영상이 올라오면 꼬박꼬박 링크를 보내준다.

친구네 가족이 다 같이 팔공산에 바람을 쐬러 가고, 좋아하는 오리구이집에 가서 맥주도 한 잔 하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숍에 가서 디저트도 먹는 모습을 본다.


어떤 친구는 온 가족이 캠핑을 가 텐트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아버지 사진을 SNS에 올린다.

손 꼭 잡고 산책하는 부모님 모습을 찍어 올리는 친구도 있고, 아빠와 주말에 운전 연습을 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괜히 '역시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는 친구도 있다.


 부러움은 이런 종류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이 치졸해 보여 한바탕 자괴감이 또 찾아오곤 한다.




이런 부러움은 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아프면서 우리 가족은 명절에 큰 집에 안 간 지 꽤 됐다.

전에는 명절 연휴면 부산 큰 집에 갔었다. 나와 사촌동생들은 전을 굽고, 작은 방에서 TV를 보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 아빠가 한 번씩 들어와 툭툭 장난을 치고 간다. 날씨가 좋거나 시간이 남을 때는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연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히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는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려고 싸우고 폭풍 수다를 떨고서 휴게소에서 핫바를 먹었다.


아빠 증세가 악화되면서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게 힘들기도 했고, 먹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드니 자연스레 명절에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여느 주말처럼 집에서 보내게 됐다.


작년 어느 명절이었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고, 나는 TV 채널이나 돌리고 있었다.

그날 삼촌네가 큰집에 가는 길에 우리 집 근처에 잠깐 들렀다. 우리 가족에게 줄 것이 있어서였나, 우리가 줄 게 있어서였나. 어쨌든 엄마는 중간 지점까지 삼촌네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다녀온 엄마 눈가가 발갰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삼촌네와 헤어지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삼촌네 가족이 부러워서.


삼촌이 운전을 하고, 명절이라고 가족이 함께 모여 날씨 좋은 날 친척집에 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그 평범하고 예전에는 우리에게도 당연했던 모습이.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거라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흔하고 고루한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 있으면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어~'라는 경악스러운 말을 뱉을 기세다.


요즘 내 부러움의 대상은 이런 평범함이며,

그 부러움의 크기는 (믿기지 않겠지만) '로또 당첨도 다음 생으로 양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면 이해될까.


즉 내 눈에 다른 평범하고 건강한 가족들은 이미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본인들이 가진 행운을 모르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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