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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Nov 29. 2020

아빠 기억하기 : 엄마

#8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아빠를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한 기록



이젠 얼굴을 보기만 해도 측은한 우리 아빠.

생각만 해도 심장 부근을 아프게 때리는 우리 아빠.

그런 아빠 옆을 보면 다른 의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엄마가 있다.


엄마를 보며 항상 생각한다.

엄마는 어떻게 버티는 걸까…


물어보고 싶어 진다. 

엄마는 괜찮아? 하고.



모욕과 수치


아빠의 진단 초기, 극에 달했던 아빠의 신경질적으로 변한 성격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의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그때,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졌던 아빠의 '화'는 모두를 지치게 했다.

당시 아빠는 그곳이 어디든, 사람이 얼마나 있던 상관하지 않고 엄마에게 화를 쏟아냈다.

엄마는 그 모욕감과 수치심을 온전히 혼자 받아들여야 했고.


-

엄마가 아빠와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 병원을 다녀온 날이었다.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만나러 퇴근 후 서울역에 갔다.

그런데 엄마는 서울역 한 구석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아빠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고…


한참 뒤 울음을 추스른 엄마는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내린 아빠가 난데없이 화를 냈다고 했다.

서울역 광장 한 중간,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곳에서. 아주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이유는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빠에게 앞을 잘 보고 서라고 말했다는 이유였다.

광장 한 중간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모욕감을 겨우 감당한 엄마는, 이제 배고프다며 소리치는 아빠에게 햄버거를 쥐어주고 자리에 앉아 울고 있었던 것이다.

-


당시 엄마에게 이런 상처를 준 것은 우리 아빠가 아니다. 아빠의 병이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순 없다. 

그 모든 것을 엄마가 어떻게 견뎠을까, 상상하는 것은 굉장히 괴롭다.




엄마의 하루


모두에게 고통이었던 그 시기가 지났다.

아빠의 화는 사라졌지만, 아빠의 병은 더욱 악화됐다.

그리고 엄마의 하루도 더욱 고달파졌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에게 약을 먹인다.

요거트에 섞어 약을 먹이고, 삼키지 못하는 약은 갈아서 먹인다.

아침에는 바나나나 단백질 음료를 먹여준다. 그러다 아빠가 이를 뿜어버리면 겨우 갈아입은 옷을 또 갈아입는다. 그러고선 아빠의 소변을 받고 다시 침대에 눕혀준다.

그리고 엄마는 9시까지 출근을 하고 2시까지 근무 후 돌아온다.


돌아오면 아빠가 '무사히' 있는 운 좋은 날이라면 점심을 준비한다.

하지만 아빠가 침대에 소변을 보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는 날이라면…

거구의 아빠를 엄마 혼자 힘으로 화장실로 옮기고 씻긴 후 속옷과 옷까지 모두 갈아입히고 휠체어에 앉혀두고서, 소변을 닦고 이불이며 침대 시트를 세탁한다.

소변을 아무 데나 보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거의 하루에 한 번, 어쩔 땐 두 번씩 이불 빨래를 한다.


그러고서 아빠를 앉혀두고 밥을 먹는다. 

삼키기 좋게 부드럽게 쑨 밥을 먹여주고선, 아빠가 사레에 들리면 등을 두드리고 심할 땐 입을 벌려 손으로 음식물을 직접 꺼낸다.

아빠가 식사 중에 몇 번이고 음식을 뿜어버리면 그걸 뒤집어쓰곤 더러워진 바닥을 닦는다.

아빠의 식사는 전쟁과도 같아서 1시간, 또는 그보다도 더 걸린다.

이런 일을 엄마는 하루 두 번씩 매일 치른다.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빠를 눕혔다가, 앉혔다가, 다시 눕혔다가… 엄마가 힘에 받쳐 같이 우당탕 넘어지기도 한다. 아빠는 끊임없이 기침을 하고 목을 긁는 소리를 내는데 나는 그걸 '기찻길 바로 옆에 사는 기분'이라고 한다. 엄마는 하루 종일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다. 그러다 또 아빠의 소변을 받고, 또다시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잠자리까지 봐주면 하루가 겨우 끝이 날 듯 하다.


하지만 잠이 들어서도 엄마는 소변이 마렵다는 아빠의 말에 일어나 소변통을 대고 있는다.

혹은 잠결에 또 소변 실수를 한 아빠 때문에 한 밤중에 이불을 갈고 난장판이 된 방을 치운다.

또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아빠에게 직접 관장약을 집어넣고, 심할 땐 엄마 손으로 대변을 파내기까지 한다.


엄마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다.

엄마가 매일같이 견디는 일상이다.




엄마는 어떻게 그래?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을 자책한다.

본인이 오전에 밖에 나가 일하는 것조차 자책한다.

아빠의 돌발행동으로 아빠가 다칠뻔해 소리를 지른 날에도, 늦은 밤 아빠 옆에 서 '아까 소리를 질러 미안했다'라고 사과하고 미안해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아빠가 힘들 텐데 또 화를 냈다'라며 속상해하고 눈물을 찍는다.


엄마는 모임에 나가지도,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어쩌다 나간 모임에서는 혼자 일찍 자리를 뜬다.

엄마가 먼저 집에 가면서 엉겁결에 자리가 같이 파하게 되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미안하다고 한다. 나 때문에 다들 더 이야기도 못하고 끝내서 미안하다고…


그리곤 아빠를 두고 모임에 다녀온걸 아빠에게, 그리고 아빠를 본 나에게 괜히 미안해한다.

엄마가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은 어디 있는 걸까.


엄마는 아빠가 유독 조용하거나 더 힘이 없어 보이는 날에는

아빠에게 농담을 던지고 웃긴 표정을 짓고 앞에서 춤을 춰보인다.

'빨리 나아서 내가 화낸거 나한테 다 복수해~'라고 말한다.


엄마는 어떻게 그게 가능해?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안다.

감정이 극에 달해 조용히 '정말 울고 싶다…' 혼잣말하는 엄마를 기억한다.




미안해. 고마워.


병원 의사들도, 엄마를 아는 사람들도, 밖에서 만난 낯선이들도 안타깝게 말한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어떻게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엄마가 전생에 아빠에게 큰 죄를 지었나 보다',  혹은 '엄마가 아빠에게 큰 덕을 봤나 보다'라고도 한다.



지금 나에게 아빠는 그저 마음 아픈 사람이라,

난 어쩔 수 없이 항상 아빠를 감싸고 엄마를 다그친다.


'엄마가 이해해야지!'

'아빠한테 말투 그렇게 하지 마!'

'아빠한테 신경 좀 더 쓸 수 없어?' 하고.


그런데 엄마는 알까.

시간을 돌려 아주 먼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엄마에게 찾아가 '고생하지 말고 멀리 도망가'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걸.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이 절망에서 진작 무너졌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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