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잔상이 있다. 할머니가 대문 밖 저 멀리서 하얀 무꽃을 한 아름 안고 오시는 모습.
초등학교 때 자연 시간 준비물이었다. 마침 가정의 달이라 할머니 댁엘 갔고, 간 김에 할머니께 무꽃이 있냐고 여쭸다. 무꽃을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자식 집에 보낼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기 시작했다. 근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더니, 웬 꽃을 품 안에 가득 안고 오시는 것 아니겠나. 그제야 그게 무꽃인 걸 알았다.
손녀가 한 말을 잊지 않고, 그 꽃을 안고 오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봄이면 늘 생각나는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도 그림으로도 남겨두지 못한 게 내내 아쉽고 속상할 따름이다. 요즘 시대라면 무조건 사진으로 남겼을 텐데.
자라면서도 생각했다. 수업에 쓸 양이 아니라 넉넉히 가져다주신 할머니의 사랑. 학교에서 쓴다는데라며 더 기쁘게 가득 챙겼을 할머니의 마음.
그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닮아가는 삶이길. 받은 사랑 잊지 않고, 기록하고 나누는 삶이길. 비록, 고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하루라 할지라도 누군가에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길. 늘 그렇듯, 나답게. 할머니 손녀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