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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Apr 09. 2022

폐 결절이 생겼다. 그것도 4개나...

회사 건강검진 고맙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회사에서는 만 30세가 넘으면 매년 건강검진을 지원해준다. 혈액검사, 청력검사 등 비교적 간단한 기본 항목에 더해서 심장 판막 검사, 갑상선 초음파 검사 등의 추가 항목 2가지를 더 선택해서 검사받을 수 있다.


2년 전, 괜스레 폐가 어떤지 궁금해진 나는 폐 CT 검사를 진행했고 종합 검사 결과 폐 결절이 1개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어머니의 암 병력이 있는 탓에 대학병원을 찾았고(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투병하시는 과정을 모두 지켜봐서 그런가,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덜 무서웠다) 0.3mm 크기이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하라고, 다만 너무 걱정이 된다면 1년 후에 다시 한번 찍어서 추적 관찰하자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1년이 흘러 나는 또다시 건강검진을 받았고 종합 결과지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한국 나이로 30대 중반인 나의 신체 나이는 28세였다. 후후후... 재작년보다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겠지,  몸뚱이의 몸무게는 늘었지만 체지방은 줄어들고 근육량이 조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흡족한 마음이었으나 그것도 잠시, 몇 페이지를 넘겨 보니 폐에 결절이 더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3-4개...


요즘 테니스를 칠 때 열심히 뛰어서 정말 심장이 터질 만큼 숨이 찬 적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폐에 상처가 생겼나?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에 코로나에 걸렸었나?(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안 걸렸다) 별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의구심을 없애고자 병원으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대학 병원인만큼 평일 예약을 권했다. 아니, 요즘 저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요, 평일에 어떻게 갑니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첫 예약을 실패했다. 알고 보니 재작년 진료해준 교수님은 주말 진료를 안 보는 분이었고, 다행히 주말에 외래를 보는 교수님이 있어 오늘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엄마의 투병 시절, 정보를 얻기 위해 암 환우 카페를 전전하다 보면 유명한 교수에게 진료 혹은 수술을 꼭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니까 폐가 아프면 그냥 큰 대학병원 흉부외과에 예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흉부외과 수술로 유명한 00병원 XX교수를 찾아간다는 식이다. 그래서 나도 나를 진료할 분이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인터넷에 찾아봤다. 이 분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젊어, 아니 어려보였다.


실제로 만나보니 내 또래같이 느껴졌는데, 초면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CT 단층면을 마우스 스크롤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나에게 보여주며 설명해주셨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 혈관입니다. CT상으로 하얗게 보이는 점이 이어지는 것은 혈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게 단면 사진이니까 주욱 이어져 있으면 당연히 혈관이겠죠? 그런데 잠깐 나왔다가 없어지는 것이 있죠? 이것이 바로 결절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무지 친절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엄마의 투병시절, 내가 만났던 대학병원 교수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다.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던 엄마는 주치의의 차가운 태도에 상처를 받았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물어보기 전에는 설명도 먼저 해주지 않았고, 물어봐도 당연한걸 왜 물어보냐는 식으로 답변했었다. 사실 암이라는 병이 답이 없는 병이기도 하고 사람의 죽음을 반복해서 마주해야 하는 암병동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도 되고 공감이 갔지만 그래도 엄마가 상처를 받으니 아들로서, 또 환우의 보호자로서 가슴이 참 아팠었다.


여튼 젊은 교수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 결절들은 별것 아니고 앞으로 없어질 가능성도 많은 것이어서 걱정 말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은 재작년에도 던 건데 이번에 체크가 된거라고 씨티를 보면서 설명해주었다. 나는 안심할 수 있었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선생님과 조금 친해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생각보다 건진센터에서 자세히 보네요. 이 작은 결절도 다 찾아내고." "그래서 제가 힘들어 죽겠어요." 그는 답했다.

"그러게요 토요일에도 진료하시느라 힘드시겠네요. 근데 엄청 젊어 보이세요."

"그래도 제가 형입니다."


ㅋㅋㅋㅋ간호사님과 나와 선생님(아니 형님) 셋이 같이 웃어버렸다.

힘겨운 주말 근무중 잠시나마 유쾌하셨기를,

즐거운 진료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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