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 내 시간을 사랑하기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의지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서 각자 업무를 보기로 했었다.
기분 좋게 크림이 잔뜩 든 빵과, 피칸 파이를 즐기는데 그가 혹시 저녁에는 다른 일정에 참석해도 될지 물었다.
순간 기분이 확 토라졌다. 왜 기분이 그렇게 나빴을까?
우리는 평소 '함께 보내는 시간'에 큰 의미를 두는 스타일이라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다. 그래서 주말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하루종일 붙어 있는 게 일상이었다. 각자가 주말에 어떤 일이 생긴다면, 미리 말해주며 일정을 공유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저녁에 다른 일정을 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입장이고, 사실 쿨하게 넘길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생각했던 일정이 틀어지더라도 나는 나의 할 일을 하면 되고,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알차게 보내면 되는데.
하지만 계획했던 것이 틀어지니 그 사실에 대해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미리 이야기해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사실 티내고 싶었던 걸지도) 계속해서 내 표정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상대방은 이런저런 장난도 치고, 내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뚱- 했던 것 같다.
머리로는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었을까?
‘날도 좋은데, 나랑 더 시간을 보내지’ 하는 생각 때문인지, ‘나랑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좋지만, 미리 이야기해주었으면 나도 다른 일정을 계획했겠지’ 하는 생각 때문인지.
물론 둘 다이겠지만 어떤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고. 나의 감정의 주인이 나였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이 상황도 짜증이 났다.
왜 나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의존적일까? 자꾸 이 사람에게 내 기분이 좌우되면, 그게 우리 관계에 있어서 과연 좋은 일일까? 내가 토라졌을 때, 나의 기분을 챙겨주고 장난도 쳐주는 상대방의 모습에서 내밀한 안도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집에’ 있는 것이 싫어서 기분이 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걸 좋아한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적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단순히 혼자 있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집에 있기 싫었던 게 아닐까?
그럼 난 왜 우리 집이 싫을까? 집이 힐링의 공간, 내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어서는 아닐까? 가족들도, 나를 따르는 고양이들과 강아지들도 있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물건이 어질러져 있기도 하고, TV 등의 소음이 있기도 하고, 내 옆에만 있으려고 하는 강아지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커피도 없고.. 그렇다보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의 활동을 집중해서 하기에는 어려웠던 것 같다.
생각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나는 평소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극도로 싫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그동안 고입, 대입, 임용고시 등등 꼭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었기에 시간에 늘 쫓기며 살아왔는데, 막상 꿈을 이루고 보니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 쩔쩔맸던 것 같다. 시간을 의미 없이 쓰는 그 자체가 싫어 그 시간에 억지로라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 자체가 나쁘다고 하긴 어렵다. 누군가는 참 성실하다고 칭찬할 지도 모른다. 시간을 아껴쓰는 것 자체가 지탄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강박이 되고, 그렇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그건 건강하지 않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기 위해 매번 카페로 나서기는 어렵다. 물론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이 내 기분에 특효약이기는 하다. 하지만 매일 이를 반복한다면 비용도 비용일 것이지만, 요즘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커피 중독’. ‘설탕 중독’ 이슈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른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집에서의 나의 공간을 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인 듯 했다. 그러니 나의 공간을 좀 더 정리정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내 방, 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런저런 스트레스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집에 있는 시간=버리는 시간’이라는 공식을 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나저나, 글을 쓰는 게 부정적인 기분과 감정을 쫓아내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오늘이다 :) 더 자주, 더 상세하게 나의 생각과 마음을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