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먹으면 느낌이 어때요?
가라앉기도, 들뜨기도 해요
먹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정이 돼요.
신경안정제를 먹었을 땐 정말 그랬다. 물론 심리적인 이율 무시할 순 없지만 그건 그냥 스스로가 아는
'위약 효과'일뿐이고 약 효과가 있으니까 마음이 안정되었겠지.
처음 먹었던 정신과 약인 신경안정제를 먹었을 때는 먹자마자 느낌이 달랐다. 마음이 차부운-해지며 잡생각이 없어지진 않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즉, 졸리다는 말이다. 졸리면서 상당히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밖에 누가 있을 거라는 공포심이 덜해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난 괜찮을 거라는 안정감이 들었다.
나는 약을 잘 받는 사람이었다. 부작용도 없고 최소용량으로 시작했는데도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 바로 입면시간이 짧아졌다. 심할 때는 ASMR 세 시간을 들어도 잠이 오지 않는데 약을 먹은 후엔 30분짜리 영상을 틀어놓고 영상이 끝나기 전에 잠에 들었으며 좀 안 드는 날에도 그래봤자 1시간 내엔 잠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별 느낌 없어요
우울증 약과 항불안제로 약을 바꾼 뒤로는 크게 다른 느낌은 없었다. 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튀지 않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음... 생각을 더듬어 보면 아마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보다는 생각의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도 게으른 편인데 한 번 안 좋은 상황에 빠져 동굴로 들어가면 아예 밖에 나갈 생각이 없어진다. 집안일도 안 하고 자기 관리도 안 한다. 그래서 집이 어질러지고 행색도 추레해진다. 그런데 약들이 아마 몸을 일으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심연에 빠진 듯 깊은 우울과 불안한 생각들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생각들이 줄여지니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들뜨는 기분이에요
우울증약의 보조제는 먹었을 때 커피 마시고 각성한 듯 생각이 위로 가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강했다.
약 두 개를 먹고 있는데도 다시 동굴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땅을 파서 심해로 들어갔던 시기에
원장님은 새로운 약 반알을 추가해 주셨다. 찾아보니 주요우울장애 치료의 부가요법제라고 나와 있었다. 여러 역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 약은 확실히 효과가 좋긴 하지만 먹다 보니 왠지 차분하게 잠을 자고 싶은데도 머릿속은 계속 활동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임의로 며칠간 그 약을 빼고 먹은 뒤, 원장님께 솔직하게 느낌을 말하고 빼달라고 해서 안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안 먹으니 하루인가 이틀 만에 바로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음 진료 때 바로 다시 추가 처방을 부탁드렸다.
내가 약을 빼달라고 요청했을 때, 원장님은 약 때문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그냥 순수히 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약을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그 약을 같이 먹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간호사이지만 정신과 약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한다. 학교 때 배우고 실습한 뒤로 정신과에서 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지극히 환자로써의 느낌을 적어보았다. 환자이기 때문에 약의 기전이라던지 부작용을 꿰뚫고 있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다 알게 되면 조심스러워지니까.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나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정신과 약이 모든 사람에게 부작용이 있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이 사람은 약을 먹고 이런 경험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만 봐주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