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말고 내가 약을 먹고 있는 것을 아는 사회에서 만난 지인도 그랬다.
약에 너무 의지하진 말라고. 물론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내겐 그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열린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은 남아있는 것 같다. 물론 나조차도 편견이 0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약을 먹을 수밖에 없는 심정을 안다. 정신과 약은 누군가에겐 동아줄이다.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것이다.
처음 신경안정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조금 잠 못 자서, 약 좀 먹으면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간 게 아니었다. 병원에라도 가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것은 가족과의 일을 말하러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더 심각했다. 병원에도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발을 떼기도, 도움을 청하기도 싫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숨은 쉬고 있고 안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겁이 나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는 것을.
훗날 나는 애인에게 말했다. 약이 나쁜 게 아니라고. 나는 약을 먹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가능했고 누군가를 만나기로 마음도 먹었으며, 그래서 너를 만난 거라고. 지금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도 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잠을 잘 시간이 다가오면, "약 먹었어?", "약 얼른 먹어."라며 먼저 내 약복용을 챙긴다. 나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이번엔 약을 바꿨고 다시 추가했고 뺐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