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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Dec 08. 2023

무너진 6개월 후, 시작이 어렵다

시작을 가로막는 트라우마


6개월 동안 뭘 했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예전부터 관심 있던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편집자 K'님의 강의도 듣고 한겨레교육에서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오프라인에서 하는 '출판편집스쿨'에 등록하려고 대학생이 수강신청하듯 신청 시간만 기다렸다가 광클을 해보기도 했다. 신청에 성공하면 다니는 동안 서울에 집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몰렸는지 사이트가 뜨지 않아 신청 버튼을 누르지도 못했다. 허무하게.


5월 즈음 편집자가 되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허무하게 접고 3개월을 혼란스럽게 보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불안한 미래에 예민해져만 갔다. 그러는 사이, 가지고 있던 돈은 사락사락 잘도 쓸려갔다.




8월 중순, 아주 힘들게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현실에 부딪혔으니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했다.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살고 싶지 않다. 하는 마음이 컸지만 당장 죽지 못하면 월세를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꼼꼼하게 구인광고를 살피고 또 살폈다. 오랜 시간 끝에 밤 근무를 하지 않고 집에선 멀지만 응급실도 중환자실도 없는 의원급의 외과병동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출근을 했다. 앞서 면접 봤던 다른 곳의 출근을 취소할 만큼 신중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신중함이 무색하게 이틀 만에 그곳을 그만두고 말았다. 일을 배우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고 그 많은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자신이 없었다.


그리 짧은 시간에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 생활을 하며 없었던 일이었다. 간호팀장님이 마지막으로 붙잡았을 때 나는 답했다.


"제가 아직 일 할 준비가 안 됐나 봐요."


그 말을 뱉고, 다시 구직자가 된 나는 그날 알았다. 정말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내게 안정을 찾을 시간은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면접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고 뭐든 잘 안 될 것 같았다. 그 어떤 것도 잘할 자신이 없었다. 시작이 무섭고 불안했다.

며칠 후, 병원에 가서 이런 감정을 그대로 뱉어내자 원장님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면접을 보는 거예요. 잘 볼 필요 없어요. 그냥 봐요. 그냥."


현실을 직시하되, 부담을 주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면접을 계속 봤다. 여태껏 한 군데를 정해 그곳만 보고 입사를 했던 내가 이번에는 입사철회만 두 번, 면접 과정에서 입사 거부를 한 번 했다.


결과는 잘 안 된 것이 맞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과정이 자신감과 자존감을 올려주었다. 사람을 만나고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는 일련의 활동이 내게 자기 효능감을 심어준 것이다.








자기 효능감의 힘으로 탄력을 받아 곧바로 지원한 또 다른 곳에 입사를 해서 또 '시작'을 했다. 이번 시작은 유난히 어렵고 힘든 시작이었다. 시작을 시작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잘 해보려고 해도 이런 일이 생기니 정말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보다.'

이런 생각에 좌절하고 무너질 대로 무너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언젠가 원장님은 이렇게 물었다.


"이런 시간들이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나요?"

"아니요. 하나도요."

"돼요."


무책임한 말처럼 느껴진 그 말. 한편으론 너무 단호해서 정말 그럴거 같다고 느껴진 그 말.

정말 그 시간들이 내게 도움이 된 걸까. 혹은 먼 훗 날 도움이 됐다고 생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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