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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Oct 14. 2024

친구라는 이름으로

#1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빤히 날 바라보던 그 애가 물었다.


"너랑 난 무슨 사이지?"


그 물음에 난 했다.

"우리? 당연히 친구지 무슨 사이야."


애써 속마음을 숨긴 채, 새삼스럽게 이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 애를 알게 되고,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애를 향한 감정이 그저 우정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리고 또 알 수 있었다. 이건 그 애를 향한 나만의 일방적인 마음이라는 걸.

그래서 섣불리 고백할 수 없었다. 나만 마음을 잘 숨긴다면, 우린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금처럼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


"야,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묻는 거야?"

"아니, 그냥."

"그럼 나도 한 번 물어보자. 너한테 난 뭐야?"

"너? 오래되고 좋은 친구지. 언제든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내가 너 많이 의지하는 거 너도 알잖아."


지수의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친구로서 적어도 이 애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수의 말에서 그 애가 나에게 긋고 있는 우정이라는 확실한 선이 느껴졌다. 내가 그 선 안으로 들어가 친구 이상으로 한 걸음 가까워지려 한다면 그 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행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그 애와 난 강원도 강릉으로 향했다. 여름휴가를 맞춰 함께 가기로 한 강원도 여행. 이번 여행은 지수의 차로 함께 움직이기로 했는데 아침 일찍 날 데리러 온 지수를 대신해 강릉까지 내가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허를 따고 무사고 운전경력이 10년 가까이 되는 나다.  차가 아니라도  일 없겠지.


여름이라 아침 6시라 해도 이미 날 밝아 있었고 영동고속도로의 막히는 구간을 지나자 차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피곤했는지 조수석에 있는 지수는 그새 잠들었고 난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그 애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어느새 한 여름의 따가운 아침 햇살이 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수의 얼굴에도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아 선바이저를 내려줬다.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녀석. 그러는 사이 창밖의 풍경은 푸른 녹음으로 변했다. 창 밖 가까이에서부터 저 멀리까지 온통 푸르름의 세상이다. 에서부터 여름까지 강원도로 가는 영동고속도로의 이 녹음은 왠지 모를 편안함을 안겨준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지수를 깨웠다.

"지수야, 화장실 안 갈래?"

"으응.. 여기 어디야?"

아직 잠에 취한 지수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휴게소 들어왔어. 잠깐 쉬었다 가려고. 졸려서 커피 한 잔 사 올까 하는데 넌 뭐 안 마실래?"

"응 난 괜찮아. 그냥 너 마실 거만 사와. 이따 마시고 싶으면 니 거 조금 마실래.. 아 근데 미안.. 내가 어제도 야근을 해서 너무 졸리다. 운전하는데 미안해."

"아냐, 괜찮아. 더 자."


광고회사에 다니는 지수는 야근이 잦다.

사실 올 해도 여름휴가는 못 갈 것 같다 했었는데 어떻게 시간을 낸 모양이었다. 강원도로 혼자 휴가를 갈 거라는 내 얘기에 혼자보단 둘이 가는 게 재밌지 않겠냐며, 갈 거면 자기도 데려가라지수. 물론 오빠와 함께 사는 지수 집에서 술 마시고 종종 자는 날이 있긴 하지만 여행을, 그것도 2박 3일의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함께 하자는 이 녀석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 중 하나다.

이 녀석에게 난 동성친구 같은 찐친이거나 이게 아니라면, 이 녀석도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거나.


따뜻한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이 한 여름에도, 1년 365일 따뜻한 커피만 마시는 지수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름날,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지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 더위에 저걸 어떻게 마시나 싶어 의아한 눈으로 그앨 봤던 게 생각난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니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얜 이 더위에도 이렇게 뜨거운걸 어떻게 마시나 몰라.'


차로 돌아오니 아직도 지수는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업어가도 모르겠네'

말과는 다르게 내 입꼬리가 올라간 게 느껴진다. 베개를 하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지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경포해변에 도착했다.

숙소는 해변 바로 옆의 리조트로 예약을 했는데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일단 차만 세워고 해변을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운전 내내 잠들어 있는 지수도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이지수, 야 인마 다 왔어."

깨우는 소리에도 기척이 없어 난 그 애의 이마에 약한 딱밤을 한 대 날렸다.

'틱'


"일어나 인마, 강릉바다 보러 가자."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녀석.

"으... 하~암. 뭐야 벌써 다 왔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더니 벌써라니. 시간 좀 봐바, 11시가 넘었어. 너 혼자 편하게 자는 동안에 인마, 내가 4시간 넘게 운전을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 바다 보러 나가자."

"어 진짜 미안.. 잠깐만 자다가 운전 교대해 준다는 게 도착할 때까지 자버렸다 야. 정말 미안. 힘들었지?"

"그래도 평일이라 차가 많이 안 막혀서 괜찮았어. 8월 말이라 그런가 확실히 사람이 좀 적긴 한가보다."


예전엔 8월 중순만 넘어도 강원도 바닷물은 차가워져서 들어가면 춥다고 했었다. 여름이 길어진 지금은 아니지만.


"일단 체크인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나가서 점심 먹고 바다 좀 보고 들어오자. 어때?"

"응 그러자."


이제야 정신을 차린 지수가 대답을 하며 선글라스와 모자를 비롯해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선글라스를 끼고 차 밖으로 나왔다. 햇살은 너무도 따가웠지만 저 앞,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이번 휴가는 왠지 특별것 같은 느낌이 바닷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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