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서로 다른 안녕
내가 말한 안녕은 너와 다시 보자는 인사였는데
어떻게 넌 긴 이별의 시작을 안녕 한 마디로 해
포엠 '서로 다른 안녕'
그 사람이 떠나고 일상이 무너졌다.
학교에 가면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자꾸만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 함께 거닐 던 길, 함께 수업을 듣던 강의실, 마주 웃으며 밥을 먹던 식당. 학교 어느 곳 하나 그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제 스물한 살의 학생이 학교를 벗어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곳을 떠나 그와의 시간들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위해. 그를 내 기억 속에 잘 묻어두기 위해.
스무 살
싱그런 봄날의 햇살이 내리쬐던 5월.
스무 살의 난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었고 그런 내 곁엔 언제나 날 바라봐주는 상우가 있었다. 내 인생의 첫 연인 상우. 학기 초의 어느 날, 상우는 갑자기 내게 고백을 했다.
"지수야, 나 할 말이 있는데. 음.. 저기 말이야. 사실 나 입학하고부터 너 쭉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고백이었다.
그때까지 연애 경험이 없기도 했고 멀쩡한 허우대로 아이처럼 수줍게 고백하는 상우의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내게 조심스레 전하는 그 애의 마음을 받았다. 그렇게 우린 1학년 신입생 중 첫 캠퍼스 커플이 됐다.
내 스무 살의 나날 속엔 언제나 상우가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고 영화를 보고. 모든 순간에 상우가 있었다. 상우는 언제나 따스한 눈빛과 다정함으로 내 옆을 채워줬고 그런 상우의 모습에 난 매일이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매일 밤 나를 데려다주던 상우는 우리 집 근처에 이르러 내가 들어가야 할 때면 꽉 잡은 내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마치 내일이면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런 상우에게 난 말했다.
"내일 또 볼 거잖아."
조금은 장난스럽게 시작된 그와의 연애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뜨겁게 불타올랐고 어느새 그 애가 없는 난 상상할 수 없게 돼버렸다. 아직 어렸던 난 그와의 시간이 영원할 거라고, 우린 언제까지고 서로의 곁에 머물거라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이 시간들을 너와의 추억으로 하나하나 채워가겠다고.
서로 다른 안녕
그렇게 1년이 지나 우린 2학년이 됐다.
2학년이 되면서 상우는 슬슬 군 입대를 생각하게 됐고 시기를 여름방학 이후로 정했다. 군인이 된 상우라니. 상상도 안 되는 모습이었지만 그보다 상우가 없는 나는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상우 없이 나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랬기에 그 이후 상우와 함께 하는 시간엔 늘 최선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통화도 자주 하고 면회도 가고 상우가 휴가도 나오고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매일 볼순 없으니까.
여름 방학이 되고 상우는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에겐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었는데 아직 그 무리에서 군대에 간 친구들은 없어서 상우가 첫 입대였다. 아마도 남일 같지 않았을 테고, 무리에서 첫 입대인 만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필요했겠지. 분명 그랬을 거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날, 상우가 집 근처로 왔다.
2박 3일 여행이지만 뭐가 그리 아쉬운지 우린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 잘 다녀올게. 어차피 전화도 자주 할 거니까. 나 없다고 울지말고. 하하"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친구들하고 잘 놀아. 남자들끼리라고 딴짓하지 말고!"
"어이구, 딴짓은. 친구들 알잖아, 그냥 우린 우리끼리 있을 때가 제일 재미있어."
"하긴, 너네 애들은 진짜 짓궂어. 웃기는 애들이야."
집 앞까지 날 데려다준 상우가 몸을 돌려 몇 발자국 가다 다시 날 돌아봤다.
그리곤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여 들어가. 나 잘 다녀올게! 안녕!"
그게 상우의 마지막이었다.
상우는 친구들과 강원도로 래프팅을 갔다가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상우가 여행을 떠나기 전 강원도는 며칠간 폭우가 내렸고 그렇게 불어난 강물은 래프팅을 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상우 하나만을 데려갔다.
그렇게 상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내 일상은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 애만 사라져 버린 거짓말 같은 일상. 꿈일 거라 믿었던 어제가 다시 오늘 현실이 되어 하루하루 날 짓누르고 있었다.
스물한 살의 내 세상은 그렇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