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여정 삼삼한 기쁨 3

예상치 못한 일들

by 한승희

예상치 못한 일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새벽 다섯 시에 울리는 모닝콜.

여섯 시에 호텔 출발했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샌드위치 도시락을 버스에서 먹고 일곱 시쯤 사비하콕첸 공항 도착에 도착했다. 이 공항 이름은 튀리키예 최초 여성 비행사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위인들의 이름이 들어간 도로이름이나 비행장 이름을 들으면 어쩐지 뿌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나이 탓인가? 젊은이들도 이런 마음이 들까? 궁금해진다.

사비하콕첸공항 내부

비행기를 타려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처럼 모녀가 같이 온 팀의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지난날의 시집살이 얘기, 딸이 결혼 생각이 없어 걱정이라는 둥 딸 가진 엄마의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말이 잘 통했다.

여덟 시에 비행기가 출발했다. 기내에서 준 샌드위치 속 페타치즈가 맛있다. 그런데 좀 느끼했다. 김치 한쪽을 먹으면 속이 개운해질 것 같은, 애매한 콜라만 한잔 마셨다.


열 시 카이세리에 도착했다. 국방공항이라고 한다. 민간인이 드나드는 국방공항이라니 신기해서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아담하고 작은 공항이었다. 군인들만 이용해야 하는 것이 국방공항 아닌가 했는데 민간인인 내가 이용을 하다니. 여행의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이때까지도 또 다른 특별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짐을 찾아 캐리어를 들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살펴보니 한쪽이 부서져 있었다. 군인들이 짐을 힘껏 던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내 캐리어가 부서지냐고.


사무실에 들러 신고를 하고 서류를 작성하느라 시간이 지연됐다. 일행들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가이드랑 신고서를 작성하고 보험회사에 신고까지 끝냈다. 다행히 공항 직원이 빨리 처리해 주었다. 일행들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맨 끝으로 버스에 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첫날 남편의 코로나 확진 셋째 날엔 멀쩡하던 캐리어가 부서지고 계속되는 악재가 불안 불안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여행하기 최상급인 쾌청한 날씨. 버스는 카파도키아를 향하여 잘도 굴러갔다.

데린구유 가는 길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예전 기독교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가 살았다는 데린구유였다. 데린구유의 뜻은 깊은 우물이라고 한다. 예전에 종교의 박해를 피해 들어와서 열악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마을 자체가 가난해 보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아이 두 명이 우리에게 손을 벌리며 구걸을 했다. 선뜻 돈을 쥐여주지 못하는 맘이 아팠다. 집시들처럼 너저분한 마을, 가치 없게 진열해 놓은 상품들은 동정심에라도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찌 된 셈인지 그들도 눈치만 보고 있고 적극적 판매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 깊고 그늘진 눈으로 우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동굴에 들어가니 좁고 가파른 계단 울퉁불퉁한 바닥 등 잠깐이어도 다니기도 몹시 힘들었다. 이런 곳에서 생활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종교적 신념이 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험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건지 신심이 없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꼬불꼬불 한 길 좁은 방 밖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은 폐소공포증 같은 병이 생길 거 같았다. 나름 광장도 있고, 와인 제조와 보관소까지 갖추고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지하든 지상이든 별반 차이가 없었지 싶다.




그래도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빨리 떠나고 싶었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이 이런 것이어서일까? 그들의 생활 역시 별로 변하지 않고 여전한 것 같아 마음이 우울했다.

빨리 보고 급하게 떠나는 우리를 황망히 지켜보는 그들은 오늘도 빈손이다.


누군가 해놓은 친숙한 낙서



나는 여행자

우울을 떨치고 비둘기집으로 가득한 우치사르로 갔다. 여기도 데린구유와 마찬가지로 물론 겨울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썰렁한 가게에 허접한 스카프 등 여행자를 위한 조잡한 상품들이 있고 사람들도 의기소침해 보였다. 특이점은 나무에 케밥 도자기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는 것 정도.


그러나 그런 마을의 모습을 잊게 하는 언덕에 있는 바위 위의 집들.

3층 정도의 높이에 창문이 있고 문이 있고 테라스가 있다. 갖출 것 다 갖춘 동화 속의 집. 지금이라도 호빗 프로도가 뛰어나와 왔냐고 인사할 것 같았다. 언덕을 더 오르니 바위 집에 문을 연 카페도 있고, 안으로 더 올라가면 비둘기들이 모여 사는 비둘기집이 있다고 한다. 예전 딱히 먹고살 것이 없던 그곳의 주민들이 비둘기를 키워 알을 먹기도 하고, 염료로 이용해 그림도 그리고 나중에는 식량이 되었다.

가축의 용도는 그것이 닭이든 개든 심지어 비둘기도 될 수 있는 거였다. 피할 수 없는 먹이 사슬 관계이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이 특이한 지형을 이용해 살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걸 보러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튀리키예 정부에서는 이곳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살지 못하게 하는 데도 아직도 몆몇은 떠나지 못하고 불법 거주 중이라고 한다.

밝은 태양 아래 기괴한 바위의 작은집은 현실이야 어쨌든 나를 동화 속 세상으로 손잡고 데려가고 있었다. 작은 창가에 앉아 차들 마실 것 같은 베란다가 있는 집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 답장이 올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마을 구경을 하고 내려왔다.

프로도는 만나지 못했지만, 영화 속 세계를 돌아보고 온 것 같았다.

우치사르

점심은 카이세리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이었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아쉽다. 식당 들어가는 벽에 병들이 붙어 있었는데, 참이슬 병이 있어 반가웠다. 길 떠나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와 연관된 작은 것조차 애착이갔다.



항아리를 불 속에서 꺼내 깨뜨리는 불 쇼도 보여주었다. 사진을 미처 못 찍어 못내 아쉬웠다. 말로만 들었던 항아리 케밥을 먹었다. 소고기와 감자를 항아리에서 푹 고아준 음식. 터키의 대표적 음식을 현지에서 불 쇼도 보고 먹는다. 밥도 훌륭했다. 같이 나온 밥 야채 수프와 빵 대접받는 기분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항아리 케밥


가이드가 터키인들이 즐겨 마시는 천상의 음료를 서비스로 냈다. 이름하여 ‘아이란’ 이란다. 우유보다 걸쭉하고 요구르트보다는 묽은 음료. 식사와 함께 마시는 음료라고 한다. 첫 입맛은 시고 텁텁한 맛 때문에 “누가 천상의 맛이라고 했어?”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분위기상 여기는 튀르키예, 나는 여행자로 그곳의 음료를 맛보는 중임을 잊지 않고 아이란을 다 마셨다. 나중에 버스에서 가이드가 음료 맛 어땠냐고 묻는다.

“으~음, 천상의 맛?”

천상의 맛 음료 아이란


점심을 먹고 괴레메 마을 파노라마에 갔다.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 중 한 분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내려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나도 아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렸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나는 일, 이 또한 여행의 재미이겠지.

가이드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이번에는 터키 아이스크림 돈주루마를 사주겠다고 한다. 파노라마 옆에 있는 카페에서 한 분씩 아이스크림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스크림 장사가 아이스크림을 갖고 장난치면서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받는데 알면서도 떨어질까 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치~ 난 안 속을 자신 있었는데,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해 본다.


쫀득한 터키식 아이스크림을 들고 카페를 지나 스머프들의 고향? 괴레메계곡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저기가 스머패트의 집인가? 똘똘이 스머프가 살던 집은? 가가멜의 집은 어디쯤일까?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의 추억을 더듬으며 딸과 나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어느새 마음은 어린 딸들과 스머프 만화영화를 재밌게 보던 젊은 엄마의 시절로 허공을 날아간다. 그 어린것이 자라서 저를 돌보던 내 젊은 날이 되어 늙어버린 내 손을 잡고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

"보고픈 거 다 보고

먹고픈 거 다 먹고

하고픈 거 다해 엄마"

언제 저리 커서 내 손을 잡아주는지 딸을 보는 내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사진 찍느라 일행 중 맨 꽁지로 나가게 되었는데 방울 털모자를 쓴 작은 아가씨가 다가왔다.

“두 분 사진 찍어 드릴게요. 요기서 이렇게 찍으면 정말 멋져요.”

우리는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버스 있는 곳으로 함께 올라오면서 주고받은 말.

혼자 터키 여행 중이며 어제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탔고, 괴레메 마을로 왔다고 한다. 그녀는 파묵칼레로 갈 예정이란다. 우리도 내일 열기구 타러 간다고 하며 헤어졌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상상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브란트 계곡이었다. 자연스럽게 낙타바위가 보이고 성모상이 보였다. 자연의 신비인지 우리 눈의 마법인지 낙타가 성모상이 있었다. 낙타 코도 만지고 머리도 쓰다듬는 사진을 찍으며 즐거웠다. 공원 휴게소에서 석류 주스를 마시고 숙소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갠 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를 한다. 내일 바람이 많이 불어 열 기구가 뜨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튀르키예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열 기구 타는 거였는데 대 실망이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뭐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고 검색을 해 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 못 뜬다고 나온다. TV에 나오는 알록달록 하늘로 덩오르는 풍선들의 장관을 눈앞에서 놓치다니 믿기지 않았다. 가이드는 파묵칼레에서도 열기구가 뜨니 차선책으로 거기서 타자고 한다.


어째 아침부터 캐리어가 부서지더라니 했다. 겨울에는 날씨 때문에 열기구가 뜨지 않는다는 날이 많다고 하더니 그제도 어제도 탔다고 하던데. 내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파묵칼레에서는 열기구 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숙소를 향해 버스는 달린다.


우리 모녀도 참 대단하다. 보고, 먹고, 걷고, 쫓아가며, 지나가는 길 위에서 어쨌거나 여행을 즐긴다. 남편이 아프건 캐리어가 부서지던 말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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