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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un 16. 2022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확신이 도대체 뭐길래?


만 나이 30세, 어리다면 어리고 나이 들었다면 나이 들었다고 집착할 나이라고 하지만 나이에 원래 그렇게 신경을 안 쓸뿐더러 , 사실 지금 인생이 또 새롭게 시작됐다고 마음을 먹는 시점에서 더욱이 나이에 대해 초월하며 살기로 했다. 요새 나는 평소 좋아했던 수다 블록버스터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다시 보고 있다. 왜 멜로가 체질인지, 왜 멜로를 해야 하는지, 멜로에는 어떤 오류가 있는지, 멜로를 잘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드라마를 통해 하나하나 돌아보고 있다.


사실 나는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보다 '말', '단어', '관계'에 굉장히 약하고 여린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보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조금 더 비중을 두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보이지 않는 걸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치곤, 보이는 것에 꽤 비중을 두고 살았던 것 같다.


특히 요 근래 맺었던 관계 중에서 확신(굳게 믿음,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지 8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왜 이렇게 나는 그 단어를 타인에게 듣고 싶었을까?'라고 질문을 건넨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객관적으로 보니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두려웠다. 확신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게 내 불안감을 계속 자극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그건 결국 오해고 착각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어주지 못해 상대방에게 믿음을 얻고 싶었고 그 단어를 갈구했다. 관계의 불안은 일방적으로 오지 않는다. 양방에서 찾아온다. 나의 바람도 그랬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었을지언정 나의 불안을 당장이라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행복한 개인으로 가는 길에도 타인의 사랑에 흠뻑 취해 항상 의지하고 싶었던 연약한 어린아이 같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물론 확신이 아직 없고, 쌓아가야 한다던 그 타인의 말도 충분이 이해가 된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타인에게까지 확신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결국 확신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던 서로를 멀리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홀로 정해버린 상대방의 마음도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바라보는 길이 같다고 굳게 믿었던 상대가 다른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니 무력함이 한없이 느껴진다. 그 무력함의 증거는 결국 나는 그 타인과의 관계를 너무도 확신했고, 너무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에 남아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나는 다시 어떻게 담을 줄 모르며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멜로가 체질>을 다시 보니 또 크게 위로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상처받아도 또 사랑하고 이겨내는 한 주인공도 아닌 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굉장히 와닿는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대사 하나.


그 사람이 사과해도 풀리지 않을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고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마음이 풀려. 그럴 땐 용기를 내 봐요 미워하지 않을 용기.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귀한 거잖아.
-멜로가 체질 중


'사랑은 이 세상에 한 번뿐 이어야만 해, 어떻게 어렵게 마음을 열었는데, 너무 두려워.'라고 믿었던 내 자물쇠는 큰 도끼가 와서 치고 가게 되었고 사람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할 힘으로 더욱이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만이 내가 더 자유롭고 재밌고 명량하게 인생을 살아갈 이유니까. 나 개그우먼이고 유쾌하게 인생 사는 사람이니까. 그 마음도 잊지 않기로 했다. 한번 사는 인생 심각한 건 좀 글과 그림으로 풀고 더 솔직하게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감사하기로 했다. 모르겠다. 그냥 나는 사랑 많은 사람이니까 사랑만 하고 살란다.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하고 숨 쉬는 거 자체가 기적 아닌가? 지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


서른 되면 사랑하는 게 별거 아니고 익숙해지고 괜찮아질지 알았는데, 물론 만 나이를 제외하면 서른 살 초반이겠지만, 하나도 안 괜찮고 엄청 힘든 건 힘든 거다. 뭐 나이 더 들어도 똑같을 걸로 예상한다. 그냥 그 마음들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나 생각해 보니까 우리 나이가 너무 좋은 거 같아. 뭔가를 다시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 중에는 제일 노련하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좀 애매한 나이 중에는 제일 민첩하고.
-멜로가 체질 중


드라마를 보면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PD 역할의 안재홍이 나오는데, 사람 관계도 식물 키우는 것과 똑같은 것 같다고 느낀다. 만약 방울토마토가 잘 자라지 않는다면? 그냥 다 게워내고 큰 화분으로 옮겨주고, 새로 흙과 비료를 넣어주고, 햇빛 받는 곳에 고르게 놓고, 물을 시간에 맞춰서 주며, 그렇게 열매가 맺는 데까지 인내해서 기다리면 또 많은 방울토마토들이 열리겠지. 식물이나 인생이나 뭐가 다른가, 사람과 관계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세워 나아갈 용기가 많이 필요하지만 하다 보면 별거 아닌 것을.


지금 내 나이가 좋다. 안 괜찮은 요즘이지만, 그 자체로 좋다. 안 괜찮을 땐 내적 성장이 되고 있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 되니까.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그까짓 거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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