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드디어 여권 갱신을 했다. 새로 만든 뉴 여권을 보자마자 설레는 가슴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보헤미안은 어쩔 수 없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구나. 올해 나에게 주어진 로또 3장. 6월의 싱가포르, 11월의 베트남, 12월의 인도 비행기 티켓. 코로나 19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놓았던 내 모습은 그 자체로 무장해제되었다. 20대에 국내 기차표 끊듯이 여행을 밥먹듯이 가던 나에게 이렇게 홀로 비행기를 타는 연습을 해야 되는 오랜만의 상황이 온 것이다. 사실 아예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약간의 두려움과 많은 기쁨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것으로 예상하지만 내가 할머니가 돼서도 꼭 심지를 굳히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비행기 타는걸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그만큼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으면 서스름 없이 떠나야 한다.'라는 생각을 마음 한 귀퉁이에 새겨놓고 산다.
'이렇게 안전하고 편안한 한국이면 충분한데 왜 그렇게 사느냐?'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나의 이상적인 마음을 현실로 만드는데 가장 큰 원동력은 비행기에 탑승함으로써 다가온다. 특히 좁고 얕았던 나의 시야가 여행만 다녀오면 넓고 밝아진다고 해야 하나? 나는 내 자아를 깨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평소에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에서 소중한 것들을 보게 해 준다. 요즘은 좀 느린 삶을 살아가려 한다. 숨을 크게 쉬고 내뱉고, 천천히 걸어가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연약함을 마주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사람 안 변해. 고쳐 쓰는 거 아니야.'라는 말의 통념을 바꾸기 위해 더 어른이 되기 전에 나의 나약함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럼 네가 무슨 힘이 있어서 고쳐보게?'라고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핑계라고 생각한다. 지난 삶들을 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10대 때만 해도 아이들과 강아지를 꺼려했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가장 세상에서 사랑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내가 계획해놓았던 미래는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다. 그런 인생을 수없이 겪다 보니 조금 일찍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의 좋은 모습들은 가져가고, 나의 부족한 모습들은 버려보자. 그게 인생이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항상 그렇듯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다.
뭐,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연인들과의 상실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의 마지막 파트너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꿈을 항상 꾼다. 특히 2013년도쯤 인도 여행을 할 때 60살 정도 되는 부부가 배낭을 나란히 매고, 둘이 손을 꼭 잡고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었는데 그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너무 멋진 건 항상 말해야 하는 나는 그들에게 "너무 멋져요. 어떻게 그렇게 두 분이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수줍게 대답하였다. "그냥, 우리 살다 보면 안 맞는 거 투성인데 서로 맞춰가려고 여행 다녀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서로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니까. 특히 인도 여행 힘들잖아. 더욱이 그래." 그 말은 이상주의자인 나에게 굉장히 아름다운 꿈 그 자체였다. 상황이 어찌 됐든 나는 그 꿈 마음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솔직히 인도는 자주 갔지만 찬드라반 마을을 가느라 인도 여행은 거의 안 해본 나에게는 좋은 경험일 것 같다. 살아생전에 내 옆에 있는 마지막이 누구일지,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그와 함께 떠날 그날을 위해 기도한다.
요즘 일에 너무 즐거움을 느끼면서 다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돈 버는 건 원래 힘든 일이니까 그것을 가지고 함께 가는 것은 또 책임이기도 하고. 그 일상의 탈출구가 여행인 건 분명하다. 떠남으로 인해 지금의 부정적인 상황을 탈피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지난 과거들을 훌훌 털어갈 힘을 준다.
그래 이제 곧 떠난다. 열흘 남짓 남은 것 같다. 다시 새로운 세계로 달려보자!
올해 나에게 주어진 로또 3장, 그리고 내년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들에 겁 없이 도전할지 기대해보자.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보헤미안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저기 하늘을 가로지르는 날개처럼
나는 자유롭게 노래하는 보헤미안
어지러이 흔들리는 저 나뭇잎처럼
나는 자유롭게 춤을 추는 보헤미안
이 거릴 스쳐 멀리 떠나가버릴 바람일 뿐
한순간 나타났다 사라져 버릴 무지개
<장필순-보헤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