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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un 21. 2022

내가 퇴사하고 6명의 사람이 나갔다

유일하게 1년 버틴 연구원


재작년부터 1년 동안 모 대학의 연구원으로 일했었던 경험이 있다. 누군가 그 일이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냐고 물었다면 '솔직하게 정말 힘들었었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많이 울고, 많이 우울감과 자존감이 바닥 친 시기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찔하다. 그 시간들을 에 어떻게 버텼냐고 말하면 나를 많이 응원해준 사람들 그 외에 상담도 받고 약도 먹고 정신도 차렸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1년 중 한 달을 제외하고 매일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생보다 더 미생이었던 시기였으며 매일을 거울 속에서 괴물 같이 보이던 내 모습에 화장실에서 몰래 울면서 버텼다. 매번 문제를 나로 몰고 가는 상사가 있었기에 사실 여기서 못 버티는 내가 문제인지 알았다. 결국 스스로 여기서도 못 버티면 사회에서 낙오될 것 같은 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끝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2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날을 회상해본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도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본다. 지금 내게 그 일이 온다고 해도 나는 피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시간에 그 일은 너무도 하고 싶은 일이었고,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었다. 인생에 책임감 빼면 시체인 나에게 그 일은 당연히 계약된 1년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내가 원하는 길을 찾지 못하거나 방황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해야 하는 제안이 온다면(물론 과거에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당연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숙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1년을 버텼을 것 같다.


얼마 전에 같이 일하던 K에게 내 역할이 있는 연구원 자리가 내가 퇴사한 지 2년 만에 6명의 사람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분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심지어는 아이들의 어머니라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아무도 버틸 수 없는 자리를 해냈구나, 그렇게 강한 책임감 하나로 마지막 20대를 잘 울면서 보냈구나. 일이 끝난 후에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종종 내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한다. "유일하게 그 자리 1년 버틴 사람 설주 선생님밖에 없지 않아요?, 대단한 것 같아 정말."


물론 살다 보니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어쩔 때는 아니면 빠르게 피해야 할 때도 있고 도망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일 덕분에 버티면서 사는 삶에 한 단계 코스를 밟은 나 자신은 어떻게 성장했느냐?라고 질문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한 태도로 지금 일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 같다. 만약 나가 이 연구원을 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하는 4개 정도의 직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버틸 자신이 있었을까? 이렇게 일을 통해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을까? 그때의 시간을 통해 배운 것들은 분명히 부정하지 않고 나쁜 일들을 잘 흘려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내 자신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알아서 증명되기도 한다.


나: 사람들이 계속 나가서 너무 힘들지?

K: 고마워, 언니 내일 안 그래도 회식이었거든

나: 회식을 몇 번 하는 거야.

K: 마무리 좋아하시잖아

나: 마무리를 몇 번 하는 거야. 아휴 속상하다.

K:  말이 없어 사실. 어쩔  없지.

나: 쉽지 않아 인생이 굴러가는 게 그렇지.

K: 인간적으로는 힘들긴 하지만 돌파하면서 그릇이 넓어지는 거지.

나: 그렇지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말로 인해서 우리가 좌지우지될 수는 없잖아.

K: 사람이 모이는 곳은 다 그래, 함께 하는 곳은 다 그렇잖아. 그렇다고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렵게 부대끼며 살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등 돈을 급급하게 벌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면 더욱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그 가운데 대화로 타협점을 찾고 정말 옳은 게 무엇일지 지혜로운 말들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 시절에 나는 그 방법에 많이 미숙했던 것 같다. 나름 내 방식대로 대화를 했지만 듣지 않으려 해서 때론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화가 나고 울분이 많이 터졌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누구도 딱히 원망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게 지금이라면 조금 더 단호하고 단단한 방식들을 찾았을 테지만 그래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그 전의 빈 만두 속 같던 나도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꽉 찬 만두 속일 지니게 되어가고 있구나.


그래, 그 시절에 나에게 다시 말해주고 싶다.

"설주야, 너무 잘 버티고 있어. 그리고 이 시간들 단 하루도 헛되지 않았다는 거 잊지 마. 너는 어려워도 그 상황을 마주하고 해결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어. 최선을 다했잖아. 그리고 시간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어. 너를 지나친 사람들이 모두 너를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있어.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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