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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ul 26. 2022

매일 방탕함과 싸웁니다

팀켈러의 '방탕한 선지자'를 읽으며 우선순위 돌아보기


지금은  인생에 있어 가장 열심히 교회를 나가는 시기이다. , ,  예배와 기도회를 드리며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인생을 맛보고 있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갈까?' 싶은 두려움도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교회로 달려가는 시간이 요즘 매일의 순간에서 가장 기쁘고 감사한 때이다.


특히 무엇보다 예배당에서 고요하게 기도할 때가 가장  기쁨이고 축복으로 느껴진다. 기도를 하는 행위 자체는  자신의 죄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인데, 내가 요새 기도하는 주제는 오직  가지이다. '내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있도록 도와주세요.' , 기도 안에는 절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의 힘을 믿으며 걸어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그게 매일 이루어지지 않고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살아야만 한다.'라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신앙 관련 서적을 읽을 시간은 저절로 많아졌다. 특히 요새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에서 본 요나서의 요나의 모습이 나 자신 그대로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먼저 방탕에 대한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방탕[self-indulgence]: 주색(酒色) 빠져 행실이 추저분함. 특히, 절제하지 못하고 허영이 가득하며 삶의 규모가 없고  내면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찾아볼  없는 타락한 자의 그릇된 행태를 가리킨다.


 나름대로 방탕항 인생과 거리가 멀다고 정의하며 살았는데, 사전의 의미를 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욕심으로 방탕한 인생을 살아왔는가?' 특히 무엇보다  머릿속에서 직접 그려놓은 인생 설계도를 바라보며 스스로가 인생 계획을 했다는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 특히  계획은 모두  의지에서 나왔으며 그것들을 상상하고 하나하나씩 이뤄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내가  향한 계획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요즘 따라 인생은 역시나  마음대로 풀리지 않고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심지어 미래를 위한 대비를 하는  자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삶에서 만나는 폭풍이 우리 잘못의 결과이든 아니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폭풍을 통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다. ( 8:28)


요나의 삶이 그러하였다. 요나는 자기의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들을 이해하려 했지만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만만치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달아나는 도중에 물고기의 뱃속에 3일 동안 갇혀있었고 기도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요나서는 그냥 어느 소설의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요나의 삶을 샅샅이 살펴보고 자신의 삶에 대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30년 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려고 마음먹은 내게는 헤쳐나가야 할 삶의 의지가 샘솟는 말씀이라고나 할까?


지금  시기는 특히나 하나하나 해체해서 삶을 뜯어보고 있는 여정 중에 있다. 사실 나는 셈에 약하다.  계산은 정말  중의 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손해보고 사는 인생이 많았는가. 거기에 플러스로 인생 계획이나 마음대로 되지도 않아서  마음 안에는 속상함과 불평이 가득했던  같다. 그런 나의 점을 바보 같다고 별로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자학한지도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행동으로 가까운 이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같다. 그래서 '이렇게 살면  되지. 나도 계산하면서  줄도 알고 굳이 힘들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주지도 말고, 와 내 주변인들만 생각하며 살자.'라고 결심했는데, 역시나 타고난 성향은 무섭다. 그건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달간 많은 고민을 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나의 인생에서 소중한 이들과 함께 약속을 맹세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20대의 전부를 인도 찬드라반 마을 아이들에게 '필르밀렝게(다시 돌아올게)'라고 외치며 내가 하고 싶던 꿈들을 모두 포기하고 매년 그들에게 갔을  말이다. 지난  년을 돌이켜보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고 남들이 살고자 하는 표준대로 살고 싶었던 이십 대였다. 나도 서른쯤 되면 이런 커리어를 가지고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고, 안정적으로 자기실현을 이루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며 나의 모자란 욕구들을 모두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아닐까?'라는 좌절의 시간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인생을 감수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향해 달려가고 언약의 말들을 진심으로 지켰고,  과정들을 만만치 않았다. 정말이지 거친 폭풍과 함께 지내왔고 많은 눈물과 아픔으로 살아왔다. 마지막 찬드라반 마을을 가던 해인 2020년은 8 동안 사지 못했던 맥북이 너무 사고 싶어서 인도 가는  주저했다. 그만큼 벌이도 상황도 열약했고  안에 갈망하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적으로 지배하던 시기라고 고백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보기에  미련하게 인도 땅을 밟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과 함께 지낸 오랜 시간들은 말로 설명할  없을 정도로 지배적이었고 슬픔은 잠깐이고  기쁨을 누릴  있었기 때문이다. 밑의 문장은 내가 찬드라반 마을에서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세기 전, 위대한 프린스턴의 신학자 B.B. 워필드는 "우리 주님이 겪으신 감정들"이라는 주목할 만한 학술논문을 썼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의 감정을 묘사하는 복음서의 모든 사례를 살폈다. 그는 예수님이 겪으신 대표적 감정을 담아낸 전형적인 진술이 "불쌍히 여기셨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그리스어 구절은 말 그대로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마음이 움직였음을 뜻한다. 성경에 예수님이 웃으시는 대목이 한번  나온다면 우시는 모습은 스무 번 나온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었는데, 우울한 천성을 타고나서가 아니었다. 그분은 성령과 아버지 안에서 엄청난 기쁨을 누리셨다. 하지만 웃는 것보다 훨씬 많이 슬퍼하셨다. 그분의 긍휼히 우리를 그분과 이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슬픔이 그분을 슬프게 했고, 우리의 고통이 그분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162p


그리고 코로나 공백을 넘어 지금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찬드라반 마을을 가려고 결심한  모습은 이전과는 굉장히 다르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과 진정한 사랑을 나눈 경험은  삶에서 가장 강하고 지혜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경험이었고, 이것은 결국   전체를 바꾸어주었다. 결국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어리석은 선택이나 약속을 지키려 했던 모습들은 나의 가장 강점이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  자신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가장 강해지고,  사랑은 이미 하늘에서 또한  땅에서도 모두가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누군가 응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곳을 다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이렇게 내가 느꼈던 경험들이 있기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방탕함에 빠지게 된다면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보다 방탕함이 별개 아니라고 느낀다. '심플하게 술먹거나 나쁜짓하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방탐함은 서로에게 혜택과 이익을 얻으며 살아가는 관계적인 삶이라고 느낀다. 자발적인 고통을 감수하면서 나아가는 사랑이 아니라 나에게 원하는 것을 주어야만 사랑할  있는 관계는 결국 깨어지기 마련이다. 순간의 어려움으로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풍요로운 미래를 줄지는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나에게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주지 못할때 화가나고 속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나아가서 화해의 영역으로 까지 가야 한다.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꺼내고 서로를 안아주며 용서하는 능력이 생길때 더욱이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은 진리이다. 


물론 이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솔직하게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나아가다보면 어느덧 더욱이 주변에 아름다운 관계들로 이루어진  모습을   있겠지. 이제는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때다. 진정으로 사랑해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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