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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8번의 꿈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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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ul 20. 2020

나는 나답게

꿈을 키운 길, 다섯 번째 이야기


2018년, 대략 8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24번째 비행기를 타게 될 나에게 묻는다


때론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아프리카에서

네가 이 짧은 기간 동안 무엇을 향해 그렇게 달려갔었니?

그렇게 마음껏 꿈꾸게 하고 싶었니?


아직 한 페이지도 적지 못한

나의 짧은 순간들이 모여 앞으로의 나를 만들겠지


이곳에서 마지막 순간도 나는 나답게




What's  your playground?


[Eastern Europe] Poland, Kielce


2018년 스웨덴에서 Child Culture Design 전공으로 석사 교환학생을 하며 그해 3월 폴란드 Kielce라는 도시에서 바르샤바 예술대학생들과 함께 놀이터를 설계하기 위해 워크숍을 진행했다. 폴란드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는지 놀이를 할 때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함께 워크숍을 함께 진행했던 폴란드 친구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등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폴란드 Kielce에 설치된 놀이터


5개월의 긴 프로젝트인 만큼 쉽지 않았지만 좋은 팀을 만나 직접 폴란드에 놀이터를 세울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놀 권리가 아동에게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잘 노는 아이가 잘 큰다.'


안전하고 즐겁게 놀았던 아이일수록 삶의 즐거움과 여유를 즐길 줄 안다는 것은 정말 헛된말이 아니었다.



[Southern Asia] India, Chandrabhan


그 프로젝트를 계기로 찬드라반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당시 한 해 동안  'What's your playground?'라는 주제로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을 만나며 놀이터 워크숍을 하러 돌아다니겠다고 거침없이 무모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 궁금증 하나로 4월 말에 클레이 15개 세트를 가지고  찬드라반 마을을 향한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찬드라반 아이들은 놀이터의 존재에 대해서 과연 알고 있을까?' 


워크숍을 해본 결과 예상과 들어맞게 아이들은 놀이터를 몰랐다. 그래서 더욱 워크숍의 결과물들은 굉장히 참신했다. 놀이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도통 모르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하나의 상상의 공간이었다.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놀이터 워크숍은 그 어떤 곳보다 찬드라반 아이들과 함께했던 워크숍이었다.


놀이터를 모르는 아이들의 놀이터


몇 번이고 그 땅에서 가만히 곱씹었다.


[Northern Europe] Sweden, Göteborg


또, 내가 8개월간 공부를 하기 위해 몸담았던 스웨덴에서 5월쯤에 워크숍을 진행했다. 역시 아동 선진국답게 아이들은 넘쳐나는 놀이 공간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워크숍을 하는 동안에 통제가 안될 만큼의 활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어떻게 놀아야 하고 놀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워크샵의 결과물은 굉장히 다양한 놀이터들을 재현했다.


사실 스웨덴에서는 나도 살면서 보지 못했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놀이터들을 많이 보게 돼서 신기했었는데 이 아이들의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 딱 그 기분 그대로였다. 알 수 없는 것까지 다 알고 있던 아이들의 놀이터.


[West Europe] Portugal, Porto


그렇게 6월이 되었다. 또 하나의 경험을 가지고자 떠난 포르투, 낭만과 와인의 도시로만 알았던 이 곳의 현대미술관에선 아이들과 함께 건축물 워크숍을 진행해서 멋진 결과물을 전시해두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예술가였다.


[East Africa] Kenya, Kabranet



그리고 7월 하쿠나 마타타 케냐! 한달살이를 했던 케냐에서도 카바넷에 가서도 워크숍을 진행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아프리카 아이들답게 무지 역동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이런 에너지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이곳도 놀이터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쉽게 놀이터를 상상해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잘 만들어주었다.



[West Europe] Germany, Berlin


8월에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스웨덴과 굉장히 비슷한 놀이터들이 많았다. 딱히 꾸며내지 않았지만 자연과 하나였고 아이들은 마음껏 그곳에서 뛰어놀았다. 그리고 늘 보호자들이 아이들과 함께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고 다양한 놀이터들이 곳곳에 존재해있어 이곳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권리를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Eastern Asia] South Korea, Anyang


그렇게 9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역시 아시아의 교육은 남달랐다. 아이들은 훨씬 차분했으며 섬세함은 정말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단 선생님의 눈치,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많이 한다는 것이 같은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우리 대한민국 아이들 대단하다 '짝짝짝' 박수를 주고 싶었다. 이렇게 대단하게 잘 만들어낸 그들의 놀이터에 비해 획일화되어 있는 실제 놀이터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 걸맞은 놀이터는 언제쯤 생기는 걸까?'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던 시간이었다.


[Southern Asia] India, Chandrabhan


마지막으로 12월, 찬드라반 아이들에게 정말 어떤 놀이터를 문화적, 지리적, 정신적 등으로 접근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하기 위해 다시 인도 땅을 밟았다.


역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놀이터 워크숍은 그 어떤 곳보다 찬드라반 아이들의 놀이터 워크숍이었다. 놀이터라는 장소를 몰라도 누구보다 순수하게 놀이터를 그려내는 모습은 내 마음에 작은 불씨를 붙여주는 것 같았다. 


찬드라반 아이들과 워크숍이 끝나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관찰했다. 아이들은 돌부리가 많은 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다치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주변에 버려져있는 쓰레기를 가지고 노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같은 동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동네 한구석에 모여 일을 하지 않고 도박을 하며, 어머니들은 집 안에 갇혀 넘쳐나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로부터 외면받아 동네를 배회했다.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은 언제쯤 안전한 공간에서 즐거운 쉼터를 찾을 수 있을까?'


정말 나답게 놀이터라는 주제 하나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각 나라의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어떤 공간일지 그리고 무엇보다 놀이터가 없는 찬드라반 마을의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미지의 세계

상상의 나래

자신만의 공간

함께하고 가고 싶은 곳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장소


그런 곳이 아닐까?


사실 이번 글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폭풍처럼 경험했기에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8개월간 튼튼한 두발로  'What's  your playground?'라는 주제를 품에 안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워크숍을 진행했다는 사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호기심이 또 삶을 재구성해줘서 잊지 못할 문헌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


가끔, 아주 자주 이런 내가 피곤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참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의 호기심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고 너답게 이끌려서 잘 살아왔다고. 토닥토닥 어깨를 쓰다듬어 주는 밤이 돼야지.







참고문헌 : A study on playground for the untouchables : focusing on Chandrabhan village case, India -Sulju Kim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7ed49e222c34f92dffe0bdc3ef48d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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