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운 길, 다섯 번째 이야기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가 가끔 운다
어디선가 남정네들이 오줌을 싼다
아무렇게나 쥐가 돌아다닌다
5시간 정도 흘렀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입으로 들어가는 감자칩
무거운 배낭을 던지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편안한 미소로 웃고 있다
기차를 타고 누워서 생각한다
이상한 나라다
무엇이 그들을 웃게 했을까
어디서부터 다른 걸까
나도 피식 웃고
잠에 든다
인도에서 처음 기차를 탔을 때, 그 많은 기차들 중 하필 새벽 6시 기차. 무거운 배낭을 짊어들고 델리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찬드라반 마을을 위한 선물을 위한 짐. 깜깜한 새벽을 이기고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두통. 아무것도 몰랐기에 더 용감했던 시간.
사실 인도 기차를 처음 타봤을 때는 은근한 상상과 기대를 많이 품고 갔는데 역시 인도답게 기대 이상이었다. 기차역 안에 소가 자리 잡고 있었고, 쥐들이 돌아다니고, 누군가의 노상방뇨 등 여러 가지 민낯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 금방 올 것 같던 기차는 하염없이 연착이라며 막막한 소리를 했다. 서울의 지하철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나는 도저히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지 않았지만
'그럴 수 있어, 다 그럴 수 있어, 여기는 인도니까.'
라는 말을 읊조리며 인내를 배웠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를 넘어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인고의 시간.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그 시간.
시간이 어느덧 흘러 5시간이 넘었고 기차에 드디어 타게 되었다. 인도는 설국열차를 연상하듯 등급에 따라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1A -> 2A -> 3A -> SL 순서였고, 처음 타봤던 기차는 SL칸은 슬리퍼 칸이라고 불렸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많은 불편함을 참아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간 계절은 겨울이라 침낭은 필수였다. 또한 깨져있는 창문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찬 바람도 정말 쉽지 않았다. 겨울에는 안개로 인해 연착은 기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델리에서 오르차는 6시간 정도 걸리는데 장작 11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인도 기차 문화. 그래서 새벽 기차를 타자마자 곤히 잠을 청했다. 물론 3A부터는 잡상인이 금지라서 쉽게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지만 슬리 퍼칸은 예외였다.
"짜이 짜이, 사모사 사모사~"
사모사 왈라들의 소리를 자장가로 삼으며 잠에 청해야 했다.
기차역 중간중간마다의 풍경은 또 인도 기차의 낭만을 더해준다. 기차역 주변에 많은 빈민가들이 있다고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봤을 때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밝은 미소를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곳에 자란 아이들은 쉽게 인신매매를 당하고 때로는 철길에 일부러 한쪽 팔을 대며 기차가 지나가길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팔이 잘린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구걸을 하고 지낸다. 정말 인도에는 지나가는 곳곳마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차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또한 하나의 인고의 시간인 것 같아.'
두 번째 인도 갔을 때였다. 오르차에서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고 가는데 14시간 정도 걸리는 밤기차라서 잠을 청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워낙 도난 사고가 많은 인도 기차였기에 일단 여권, 카메라, 돈 등 중요한 소지품은 침낭 안에 꼭 소지하고 친구들과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워낙 불안함을 잘 느끼는 나는 1시간마다 깨서 꼼꼼히 가방을 확인했다. 새벽 7시쯤 됐을까 한 역에 정차를 하였고, 역시나 마음이 초조한 나머지 가방을 살폈다. 그런데 가방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을 한번 더 살피며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 어쩌지? 설마... 가방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고, 그냥 새하얗다 라는 표현이 딱 이었다. 그렇게 친구들을 깨워서 누구의 가방인지 확인해보았다. 친구 H의 가방. 엄마의 등산가방이며 가장 비싸고 좋은 가방이었다. 우리는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행히도 착한 내 친구 H는 처음엔 걱정하였으나 쿨하게 짐이 줄었다며 웃어주었고, 우리 모두의 걱정 또한 덜어주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본인에게 힘들었을 상황임에도 그것을 또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어준 친구 H에게 참 고맙다.
도난 사고가 있는 다음 해부터 최대한 3A 이상을 타려고 노력했다. 웬만하면 미리 인도에 가기 전에 온라인으로 기차를 예매하고 했다. No Problem 인디아에서 진짜 Problem을 경험했으니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 더 돈을 지불하고 도난을 방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도난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친구들의 불안과 아픔은 나의 불안과 아픔이기도 하니까.'
애를 쓰며 슬리퍼칸을 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해프닝은 진행형이었다. 세 번째 인도를 갔을 때는 정말 어마 무시한 짐이 나와 친구들에게 있었고 우리는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나눠 탔다. 나와 친구 J, 그리고 나머지 4명. 짐이 많은 택시와 사람이 많은 택시로 나눠서 탔다. 택시를 타고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 택시를 타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니 델리 역이라며 내려줬다. 수없이 많은 짐과 함께 나와 J는 기차역에 내렸다. 하지만 웬걸 내가 알던 기차역이 아니었다. 택시 기사가 기차역 뒤편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으로 내려준 것이었다. 깜깜한 새벽 5시 너무 일찍 도착했다 싶었다. 택시도 전혀 잡히지 않을뿐더러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저 무거운 짐들과 함께 발만 동동 굴렀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 때 자전거 릭샤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걸 꼭 타야 해만 해.'
라는 J의 말에 겁 많은 나는 주춤거렸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는데,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우리는 급하게 자전거 릭샤에 짐을 옮겼고 겨우 짐을 안고 탔다. 완전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 것 같은 시간. 델리 기차역은 빠하르간지(시내) 맞은편에 있어서 정말 많은 차들과 릭샤들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자전거 릭샤가 가기에는 너무 막막했다. 휘청휘청 우리를 태우고 가는 자전거 릭샤꾼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겨우 역에 도착했는데 기차가 떠나기 딱 5분이 남았었다.
'우리는 어떻게 저 짐을 옮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주위를 둘러싼 짐 옮기는 3명의 사나이들. 그들이 짐을 서로 옮겨주겠다고 말했다.
'아.. 여긴 인도인데 이건 X수작인데.. 분명 엄청난 돈을 물러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나머지 4명의 친구들과 다시 만나야하기에 방법이 없었다. 3000루피를 지불하고 짐을 옮겨주는 일을 맞바꿨다. 도저히 2명이서 옮길 수 없는 짐이었고, 정말 정신없이 기차역을 뛰었다. 그렇게 겨우 플랫폼에 도착해서 기차 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친구들 모두를 만났다. 우리가 도착하고 기차에 타자마자 기차는 신호를 울리며 출발했다. 그렇게도 연착이 많은 인도 기차는 그날따라 제시간에 도착해 제시간에 출발을 했다. 신호 소리와 함께 우리는 모두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안도의 눈물만 주룩 날 뿐이었다.
인도의 기차는 그렇게 수많은 추억을 심어주었다. 떨렸고, 긴장됐고, 무서웠고, 화가 났고, 웃었고, 참았고, 흥얼거렸고 등등 인간의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때에 따라 들으며 내 안에 마주한 한계들을 매 순간 부딪힌 시간이었다.
7년 동안 기차를 타면서 2A부터 SL까지 다양한 등급의 기차를 경험했다. 그리고 2018년부터 CC칸 기차를 처음 타보게 되었다. 앉아서 타는 기차였다. 항상 제시간에 왔고 연착되지도 않았으며 델리에서 오르차까지 딱 6시간 40분이 걸리는 마법 열차.
'아 - 많은 것들이 변했구나. '
시간이 흘러보니 인도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쥐가 돌아다니고 소가 보이던 역은 모든 동물들의 출입을 막았고, 급작스럽게 너무나도 서울역을 연상하게 했다.
'항상 누워서 가던 침대칸들을 선택하던 나도 앉아서 가는 칸을 선택했으니 나 또한 변했겠지.'
인도는 나와 함께 변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 새벽이 너무 고단했는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러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환하게 웃어주던 인도가 창문 속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변하지 않고 찬드라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