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 이야기

꿈을 펼친 길, 여섯 번째 이야기

by 설주


아주 옛날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한 소녀가 푸르름이 엉켜있던 숲 속으로 들어갔어. 수많은 작은 나무들을 저벅저벅 헤쳐나가면서 걸어왔지. 그 길을 조금 더 걷다 보면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었어. 인도에서 딱 5개밖에 없다던 바오밥나무는 오르차와 찬드라반 마을 사이에 견고하게 서있었지.


오후 6시쯤이었을까? 살짝 어깨가 시린 이른 겨울, 낮게 떠있는 해를 바라봤지. 그 해의 색깔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 주위의 풀숲 때문이었는지 붉다 못해 푸르렀지. 하늘은 주변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고 바오밥나무에 가까이 갈수록 소녀의 불안함도 함께 타오르고 있었어. 그런 거 있잖아. 가까울수록 불안해지는 거. 소녀는 깨어진 관계들을 되돌아봤지.


'우린 너무 가까웠어. 아니 내가 원해서 다가갔지. 내 모든 걸 그 사람에게 내주었어. 시간, 돈, 미래, 희망도.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아우라가 있다며 나를 바라보던 신비감에 가득 찬 눈빛은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실망으로 가득 찼지.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그저 나였을 뿐인데.'




그렇게 어둡고 고르지 못한 생각이 소녀를 붙잡았지만 다시 포기하지 않고 바오밥나무를 만나기 위해 걸었지. 진이 빠지게 무거운 걸음걸이는 쇠고랑을 찬듯했고, 눈에서는 짓이기는 뜨거운 눈물만 흐를 뿐이었지. 그래도 걸었어. 그 나무를 보기 위해.


드디어 소녀는 바오밥나무를 만났지. 소녀는 인간들에게 하지 못할 말들을 바오밥나무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지.


"나를 도와줘, 나를 살려줘."


바오밥나무는 아무 말도 없었어.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바오밥나무를 퍽퍽 쳐댔지. 그러다 지쳐 몇 번이고 바오밥나무의 껍질을 쓰다듬었어. 까슬까슬하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정도 부드러운 부분도 있는 그런 거 있잖아. 한참을 그렇게 쓰다듬다가 바오밥나무 앞에서 잠이 들었어.




꿈이었을까? 바오밥 나무의 가지가 소녀의 얼굴을 살짝 건드렸지.


"어서 일어나 봐. 내가 여기 있어. 나는 500년 동안 여기서 너를 기다렸어. 네가 언젠가 와주기를 매일 밤마다 기도했어"


바오밥나무와 소녀는 서로를 응시했지. 아무 말도 없이 소녀는 잔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어. 그들은 가상에서 온 게 아니었지. 서로를 기다리다 현실에서 만났지.


"너는 꿈을 꾸기 위해 이곳에 나를 만나러 왔구나. 정말 수고했어. 더 이상 어두운 세상은 너에게 없을 거야. "


소녀는 그 말을 듣고도 끊임없이 의심했지.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함부로 말하는 거니. 나를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기다렸다고? 내가 한두 번 속은 줄 아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소녀를 압도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툴툴거리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는데 바오밥 나무에 작은 새싹이 있지 뭐야. 아주 여린 초록잎의 새싹. 봄을 맞이 하기 위해 바오밥 나무 안에서 한참을 준비해야만 했던 새싹.


결국 소녀는 알아버렸지. 바오밥나무도 자기 자신과 같았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의 만져짐 속에서 자신의 것을 피우기 위해 거칠어졌지만 가끔은 부드러웠고, 가끔은 여렸으며 결국 모든 것이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바오밥나무는 말했지.


"나는 너를 여기서 영원히 기다릴게. 함께 푸르러지자. 함께 열매를 맺자. 그리고 씨를 뱉어 또 하나의 바오밥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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