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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Sep 03. 2020

유리조각 빼내기

단체 카톡에서 '나가기' 버튼은 중요했다.


이번 상반기는 정말 힘든 일들이 가득했다. 계속해서 불행한 환경이 주어지다 보니 행복을 이곳저곳에서 끌어내려 애를 썼다. 그렇다. 사실 내게 행복은 희박하다 못해 눈 앞에 보이지도 않았었다. 아픈 감정들을 마주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기에 계속해서 지닌 아픈 감정들을 회피했다. 그렇게 무려 6개월 정도 지나다 보니 결국 곪고 터져 사람들의 눈만 봐도 불안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단체 생활을 넘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너무 두려웠고 공황장애는 빈번하게 찾아왔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단체 카톡이나 모임들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사람 때문에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보며 절망스러움도 함께 찾아왔기에 괴로운 결정이었다. '나가기' 버튼을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누르면서도 두 손은 역설적이게 덜덜 떨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별거 아닐 행동도 나에게는 왜 이렇게 별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웬만한 카톡방을 다 정리했다. 늘 100여 개가 가까이 쌓여있던 긴 카톡들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마냥 기쁠지 알았지만 허한 마음 또한 함께 찾아왔다.


그렇게 살아본지 한 달 정도 지나다 보니 삶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개인 톡으로도 자신의 감정들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미친 듯이 쏟아내는 자들 속에서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내가 집중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자신을 아프게 하던 사람들 앞에서도 피를 철철 흘리며 마주하고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해결하고 싶어 했던 어린 소녀는 마음에서 사라져 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냉랭해지고 쓰린 일이지만 그 당시 받았던 아픔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가슴 안에 박힌 유리를 빼내고 치료해야 하는 일이 훨씬 시급 했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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