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헛되이 보내기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이 주어졌던 곳. 나는 지금 아무것에도 방해받을 이유도 필요 없는 어느 밤이 긴 동굴에 와있다. 마냥 바라고 느끼고 싶었던 시간이지만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두려워질 때쯤 낮의 힘을 빌려 차가운 바람을 맞고 힘을 낸다. 짙게 빛나는 새벽과도 같은 아침을 맞으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의 공기를 차단한 채 숨 쉬고 있다. 남은 시간들도 이곳에서 존재하는 내 모습을 곱씹으며 드넓은 하늘에 나를 맡겨 1분 1초를 더 헛되이 보내야겠다.
-2018년 1월 일기 중, 스웨덴 고텐부르크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의 완성의 문제는 나에게 완성된 예술보다 중요하게 생각된다. 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우회적인 대답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언제나 매 순간 죽어야 한다고 타이른다. 이때 죽는다는 것은 '언젠가 나는 죽어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죽는 그날의 내가 되어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죽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나의 삶, 혹은 현실의 풍경들은 되살아나야 한다. 내가 죽음으로써만 이 세상은 현전 하고, 존재하고 기억된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며,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의 임의대로 처분하거나 망각할 수 없다. 나의 삶은 매 순간 내가 죽기를 바란다.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은 '나는 지극히 살고 싶다'는 열망의 온전한 표현이다. 열심히 철저히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소생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죽을 수 없을 만큼 내가 죽었을 때 '나사로야, 어서 일어나라!'라는 그 희미하고 따뜻한 음성이 들려올 것이다. 아 어느 날에야 나는 완전히 죽을 수 있을까.
<이성복 - 아포리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