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왜 거기서 나와?

by 우연의 음악

잘못이 있다면 그의 몸이 너무 가벼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줄기 바람에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는 데 있다. 몸이 가벼워 바람을 이기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랴! 그리하여 감당하기 힘든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으니, 개 거품에 피 섞인 개 물똥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가 거기 있었던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거기 그렇게 있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모임에 가거나,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 은근히 한 번 등장해야 했다. 그리고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취향의 사람들과 성향이 잘 맞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의 성향과 전혀 맞지도 않고, 전혀 어울리지도 않으며, 그의 성향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과 엮이게 되면서,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 놓여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양평 용녀네 해뜨는마을 맨 위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에 오자마자 처음 만난 것은 어이없게도 4인용 야외 테이블이었다. 싸구려 방부목으로 만든 뒤, 역시 싸구려 오일스텐을 잔뜩 발라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테이블이었다. 그 테이블과 그의 만남이란, 한국 최고의 셰프라는 에드워드 권이 만든 특등급 한우 스테이크를 개밥 그릇에 담아 내놓은 주방 보조의 만행과 비슷했다.


테이블은 2층 테라스에 놓여 있었다. 전망은 좋았다. 해뜨는마을은 야트막한 야산을 개발해 만든 전형적인 전원주택 단지였다. 단지 맨 위쪽 집인데다, 그 집에서도 2층 테라스였으니 멀리 남동쪽으로 남한강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만삭의 임산부가 누워 편안히 쉬고 있는 모양의 멋진 산도 보였다. 동네 앞은 시퍼렇게 벼가 자라고 있는, 말 그대로 ‘논뷰’가 좋은 들판이었다.


전망이 좋아서인지 꼴에 집주인 용녀는 그 테이블에서 밥 먹기를 좋아했다. 그냥 동그란 밥상에 몇 가지 반찬을 락앤락 째 올려놓고, 한쪽 손을 바닥에 집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텔레비전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쩝쩝거리며 먹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몽타주와 정신세계를 가진 용녀였다. 그런 용녀가 2층 테라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저팔계가 선글라스에 비키니를 입고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것만큼이나 생뚱맞았다.


실제로 유도 선수 같은 덩치에 찢어진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 뒤집어진데다 두툼하기까지 한 입술, 실종된 목선은 누가 봐도 ‘저것이 바로 전설의 여자 저팔계구나’ 할 만했다. 몸매며 얼굴이 그 지경이었으니 이제 3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예사로 40대로 보았으며, 심하게 사람 볼 줄 모르는 사람은 50대까지 넘겨짚었다.


아무튼,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용녀네 2층 테라스 야외 테이블 위에 드러눕게 되었는데, 더 황당했던 것은 그의 몸을 최소한으로 보호해 줄 아무런 중간 매개체가 없는 상태에서 밥그릇이며 국그릇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다행한 것은 그래도 생긴 것과 다르게 용녀가 제법 깔끔을 떠는 편이라 밥풀이나 반찬을 흘리기는 했지만, 김치나 찌개 따위가 그릇째 엎어지는 야만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비록 그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존재론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그’가 누구인지 밝혀야겠다.


이름은 디카프리오이고, 인도계 미국 ‘거시기’쯤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바라나시 실크에 ‘행복한 눈물’이란 그림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이 1963년에 그린 ‘절망’을 금실로 수놓은, 이른바 명품 스카프다.


디카프리오는 원래 미국에 살고있는 바바의 파트너였다. 바바는, 개 이름 같지만 사람 이름이고, 올해 오십이 된 여자 이름이다. 바바는 이 스카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디카프리오란 이름을 붙인 뒤 마치 연인처럼 목에 감고 다녔다.


미국에 있어야 할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에서도 양평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러고는 싸구려 방부목 테이블보가 되었을까? 과연 디카프리오는 용녀네 2층 테라스에서 무사히 탈출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이 디카프리오의 탈출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거의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