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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Feb 14. 2022

이기주의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신학교 1학년 때다. 1학기 기말고사를 1주일 정도 앞둔 날이었다. 어쩌면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는 줄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절간 같은 신학교였다. 시험 기간이 되니 절간을 넘어 사람이 사는데 맞나, 싶을 정도로 적막강산이었다.


끝기도를 마치고 단체 공부방인 연학실로 돌아오면 대개 8시 10분쯤 되었다. 그때부터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까지 대침묵 시간이었다. 공부하기 아주 좋았다. 한 곳에 50명이 우글거렸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실제로 신학생들은 10시 45분 취침 음악이 울릴 때까지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평소에도 그 시간이면 공부 말고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시험기간이었으니 모두들 더욱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연학실 안에는 숨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때였다. 밖에서 웬 노랫소리가 들렸다. 창밖은 캄캄했다. 가만 들어보니 두 명이었다. 술을 마시고 헤롱 대며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가끔 악을 쓰듯 옥타브가 고공행진을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즐겁고 유쾌한 노랫소리였다. 


목소리를 추적해보았다. 두 명 모두 신학생이었다. 그 시간에 신학생이라면 누구라도 밖에 있으면 안 되었다. 끝기도 시작과 함께 기숙사 외부 출입문은 모두 '봉쇄'되었다. 물론 안에서 잠갔기 때문에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어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런데 두 명의 신학생들이 밖에 있었다. 그것도 1학년이. 그것도 시험 기간에. 


편의상 두 명의 신학생을 J와 K라고 하자. J는 나와 같은 교구 신학생이었다. K는 어느 교구 소속이었는지 아리송하다. 아무튼 몇 시간 전만 해도 우리와 같이 밥 먹고 공부하던 동료 신학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시간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었다. 그것도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서. 다른 신학생들은 모두 기말고사 시험 준비에 한창이던 그 시간에. 아마 오후에 몰래 신학교에서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것 같았다. 


완행열차와 고래잡이


짐작 건데 그들은 기숙사 옆에 있는 포도밭에 앉아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생활하는 4층짜리 구관 기숙사는 학교 건물처럼 길었다. 오른쪽 끝에 성당과 도서관, 보직 교수 신부님들의 방이 있었다. 왼쪽 끝에는 각 학년 단체 공부방인 연학실과 식당이 있었다. 포도밭은 바로 그 연학실 아래쪽에 있었다. 


4층부터 1학년, 2학년, 3학년 기숙사였다. 그러니까 4층 1학년 연학실에서 그 정도 데시벨로 노랫소리가 들렸으면 2학년이나 3학년 연학실에서는 더 잘 들렸을 것이다. 신부님들은 기숙사 오른쪽 끝에 살았으니 그들의 술고래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여전히 연학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바깥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에도 바깥에서는 남행열차가 오르내리고, 완행열차를 타고 고래 잡으러 가자고 악을 썼다. 


나와 같은 교구생이었던 J는 눈이 커다랗고 얼굴이 길쭉한 것이 순둥이 같은 친구였다. K는 얼굴이 하얗고 코가 납작하고 눈이 작은 게 꽤나 장난꾸러기처럼 생겼다. 실제로 장난도 잘 치고, 말도 무척 재밌게 했다. 한마디로 늘 유쾌한 친구였다. 게다가 공부도 무지 잘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다. K의 답안지가 기숙사 복도 게시판에 떡- 게시되었다. 어떤 과목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교수 신부님이 답안이 너무 훌륭해 혼자 보기 아깝다며 게시판에 붙어 놓았던 것이다. 읽어보니 실제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입학 동기 중에는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온 형들이 몇 명 있었다. 아마 그 형들은 조금 머쓱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K는 그런 친구였다. 그 K가 제대로 사고를 쳤던 것이다. J까지 끌어 들어서는. 


나의 반응, 우리의 반응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K와 J가 친 사고가 아니다. 그날 밤에 보여주었던 나의 반응, 우리의 반응이다. 그날 나는 두 사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끝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연학실 안에 있던 우리 모두가 그랬다. 


시험공부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왜 나는 문을 열고 나가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 주지 못했을까? 여름밤이었고, 그들은 젊었다. 그래도 술을 마신 그들이었다.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상황은 살펴봤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순전히 나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 몰래 나가서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 이 지독한 이기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기주의 말고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우리의 행동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기말고사를 며칠 앞뒀던 그날 밤. 월담을 한 신학생 둘이 술에 취해 돌아와 창밖에서 남행열차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가고 있었다. 나(와 우리)는 둘을 외면한 채 공부를 했다.



적어도 나에 관한 한, 나는 잘 알고 있다.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시험을 잘 봐 무사히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무사히 신학교를 졸업해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을 뿐이다. 그 이유 말고는 없었다. 자연히 1분 1초가 아까웠다. 다른 사람의 곤란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런 생각(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을 세 글자로 줄여 말하면 '이기심'이 될 것이다. 맞다. 당시 나는 수준이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면서까지 사제가 된다? '사제직'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제가 된다'는 것을 '출세'나 '성공', '신분상승'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당시 나는 대단한 의미나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가진 채 신학교에 갔고, 사제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경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다. 내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비단 이 사건 말고도) '성공, 출세, 신분 상승'을 바라는 자의 전형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그날 그 시각에 보여준 나의 반응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오래전이라 그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K와 J가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K와 J를 이해하게 된 것은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 후 인도 여행을 하고 3학년으로 복학해 4학년 씩이나 되었을 때다. 그때 나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도대체 신이란 무엇일까?'

'하느님이란 누구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일까?'


신학교 4학년 씩이나 된 내가, 군대도 갔다왔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3년 뒤 신부가 되어 일선 성당으로 가서 신자들을 상대해야 할 내가, 이런 질문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으니 내가 보기에도 참 안쓰러웠다. 그런데 어쩌랴, 내 눈에는 온통 의문부호들만 가득했다. 모든 것이 모순으로만 보였다. 모든 것이 말장난이요,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제야 나는 K와 J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그때 했구나'하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만난 K와 J


신학교에서 나오고, 직장에 다닐 때다. 어느 날 명동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K를 만났다.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그날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 재끼던 K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여전히 얼굴은 하얬고, 싱글거리는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나도 일 때문에 어디론가 바쁘게 가는 길이었고, K도 일 때문에 어디론가 서둘러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길에 선 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K는 여행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J도 우연히 만났다. 역시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다. 서울이었고, 전철역 지하도 안이었다. 어느 역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J와 나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막 전철역 안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J의 선한 눈은 여전히 왕방울만 한 것이 순둥이 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J와 내가 함께 신학교 생활을 한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같은 교구였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함께 보낸 시간은 무척 많았다. 그리고 J와는 제법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어디 근처 선술집이라도 가서 막걸리라도 한 잔 했으면 좋았을텐데, 왜 그냥 전철역 지하도 안에서 헤어졌을까? 무슨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었길래 그랬을까? 그때도 나의 이기심이 작동했던 것일까? J는 어디 지방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의 이기적 성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몸서리치게 싫지만 참 내 몸뚱이에서 잘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과연 나는 이 지긋지긋한 이기적 성향과 결별을 하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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