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
신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다. 어느 날 같은 방 동료 신학생이 2만 원이 사라졌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옷장 위에 올려놨던 돈이 사라졌다고 했다.
1학년 공동 침실에는 1인용 침대 6개가 3개씩 마주 보고 있었다. 침대마다 옷장 하나와 책꽂이 하나가 딸려 있는 구조였다. 그 친구는 옷장 위에 2만 원을 올려놨는데 없어졌다고 했다. 옷장은 보통 사람 키보다 한 뼘 정도 컸다. 손으로 더듬어 2만 원을 올려놓았는데, 어느 날 손으로 더듬어 보니 2만 원이 사라졌다는 요지였다.
신학교에서는 돈을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학교 안에서는 돈을 쓸래야 쓸 데가 없었다. 돈을 받고 뭔가를 살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유일한 곳이 서점이었다. 교내에 신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이 있었다. 1주일에 한 번인가 두 번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시간도 저녁 식사 후 휴식 시간에 30분 정도 짧게 열었다가 닫았다. 출판사에서 정가의 70%에 책을 공급받아 신학생들에게 5%의 마진을 남기고 팔았다. 자연히 시중 서점보다 책을 싸게 살 수 있었다. 일반 책들은 거의 없었다. 대개 철학과 신학 전공 서적들만 있었다.
서점 말고 학교 안에서 돈을 쓸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었다. 그 흔한 자판기도 없는 곳이 신학교였다. 자연히 평소 돈을 만지작거린다거나, 돈을 센다거나,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 다닌다거나, 호주머니 속의 돈을 확인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돈은 외출 날 밖에 나가 영화를 보거나 당구를 치거나, 술을 마실 때 필요했다. 1학년은 수요일 오후에만 외출을 나갈 수 있었다. 점심 먹고 나갔다가 저녁 먹기 전까지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외출을 해도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무튼 외출 날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학생들은 얼마간의 돈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액수가 대단치 않았다. 돈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기숙사 침실에는 고가의 개인 물품 같은 것도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기숙사는 무척 개방적이었다. 공동 침실은 말할 것도 없고, 독방을 사용하는 고학년들도 방을 나서면서 문을 잠근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2만 원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1학년 전원이 용의자?
그 친구는 자기가 생각해도 신학교 안에서 돈이 사라진 것이 황당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내게만 살짝 이야기했다. 나 역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많은 돈도 아니고 2만 원이었다. 그걸 훔칠 신학생이 신학교 안에 있을까? 내 머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2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신학생이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옷장 위에 돈을 숨겨 두었다는 설정 자체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신학생은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분명히 옷장 위에 두었다고 했다.
공동 침실이다 보니 옆방의 다른 동료 신학생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만약 진짜 2만 원이 사라졌다면, 1학년 전원이 용의자가 되는 셈이었다. 외부 사람이 1학년 기숙사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제로였다. 기숙사는커녕 운동장에만 들어서도 눈에 띄는 곳이 신학교였다.
선배들이 1학년 기숙사에 오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1학년들이 선배 기숙사 방에 놀러 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말이다. 신부님들이 1학년 기숙사에 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학생들이 기숙사를 완전히 비웠을 때, 그러니까 단체로 소풍을 갔거나, 교구청에서 큰 행사가 있어 신학생들이 모두 참석했거나 했을 때 기숙사를 몰래 둘러본다고 했다. '요놈들, 어째 잘 살고 있나'하는 점검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신부님들까지 용의 선상에 오르는 셈이었다. 2만 원 절도 용의자로.
아무리 머리를 굴러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2백만 원쯤 된다면 몰라, 자기도 모르게 물욕이 발생해 순간적으로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20만 원도 아니고 2만 원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옷장 위에 올려놓았다가 자기가 꺼내 쓴 것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20대 젊은 청춘이라 깜빡깜빡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 친구가 정말 2만 원을 옷장 위에 올려놓았고, 정말 사라진 것이 맞다면, 신학교 내에 도벽이 있는 신학생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벽은 일종의 질환이기 때문에 액수와 상관없이 주체하기가 힘들다. 아무튼.
시장통 할머니와 아버지 신부님
다음 날. 나는 2만 원을 그 신학생의 옷장 위에 몰래 올려다 놨다. 물론 내가 가져갔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뿐이다. 그 신학생이 '깜빡'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행위였다. 내가 그렇게 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나를 신학교에 보낸 아버지 신부님이 있다. 나는 그 신부님을 무척 존경했다. 따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사셨던, 참된 성직자였다. 그 신부님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돈과 관련한 것이었다.
어느 날, 사제관에서 신부님의 식사를 준비해 주는 자매님이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 그러다가 시장 바닥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야채를 샀다. 그런데 그 할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더라고 했다. 자매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 어떤 여자에게 물건을 팔았는데 돈은 안 주고 물건만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할머니는 그 여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만 보면 '저*이 그 도둑*인가'하는 생각에 근심 어린 얼굴이 되었던 것이다.
자매님이 시장에서 돌아와 그 이야기를 신부님에게 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신부님이 돈을 주면서 얼른 그 할머니에게 갖다 주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그 돈을 찾기 전까지 할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이 그 도둑놈일까'하는 눈으로 볼 것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그 할머니가 오랫동안 나쁜 생각을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신부님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자매님은 시장으로 달려가 할머니에게, 며칠 전 깜빡 잊고 돈을 안 주고 갔다며 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제야 할머니는 얼굴이 환해지더라고 했다. 내가 그 친구 옷장에 몰래 2만 원을 올려놓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며칠 뒤, 그 친구는 다시 한번 옷장 위를 훑어본 것 같았다. 그러다가 2만 원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내게 오더니 환한 얼굴로 옷장 위에 2만 원이 있더라고 했다. 자기가 잘 찾지 못했던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오히려 교수 신부님들에게 알려 공론화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정말 그 돈을 훔친 신학생이 있었더라면, 나의 어설픈 치기로 인해 바늘 도둑을 소 도둑놈으로 키운 것은 아닌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