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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Feb 17. 2022

헤롱헤롱했던 크리스마스 이브

침묵의 파티

식당 뒷마당은 제법 넓었다. 저만치 한쪽 구석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모두 젊은 서양 여행자들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6대 4정도로 섞여 있었다.  


인도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는 힌두교 성직자인 사두가 입는 오렌지 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수염도 멋있고, 생긴 것도 잘 생긴 것이 속된 말로 '도사' 비슷해 보였다. 그 사내를 중심으로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마치 스승을 가운데 모셔 놓고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처럼. 


주위는 어느새 캄캄해졌다. 모닥불만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는지 모두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와 케티는 밥을 먹었다. 약간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데 우리 두 사람만 밥을 먹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색함이 아니라 불편함이란 것을 알았다.


침묵속의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당시 나는 인도 여행 10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 가 본 경험이 많았다. 당연히 분위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는 뭔가 이상했다. 노랑머리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모두들 생긴 모습이 조금씩 달라 틀림없이 국적도 다양할 것 같았다. 더구나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은 심적으로 덜뜨야하는 그런 자리였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두처럼 보이는 인도 사내가 가르침을 펴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내도 별 말이 없었다. 그냥 모두들 우두커니 앉아 모닥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말이 적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앉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들의 표정이었다.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자격지심에 뿌리를 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눈치 없이 노랑머리들 노는데 내가 끼어 들었나?’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자리에 계속 있고 싶지 않았다. 마침 밥도 다 먹은 나는, 숟가락을 식판에 내려놓고 케티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케티,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케티는 놀란 듯 ‘왜?’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분위기를 좀 봐.’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케티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앞에 놓여 있던 짜이 잔을 가리켰다. 밥 다 먹었으면 차나 마시라는 뜻 같았다. 나는 짜이나 마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한 모금 마셨다. 식은 짜이에서 비릿한 우유 맛이 났다. 


여전히 사람들은 말이 없었고, 모닥불만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짜이를 다 마신 뒤 다시 케티에게 작은 소리로 먼저 일어나겠다고 했다. 그때였다. 케티가 자신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내게 건넸다. 케티가 가끔 말아 피우던 낯익은 페이퍼 담배였다. 


‘언제 담배를 말았지?’


케티가 내민 담배를 받아 쥐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페이퍼 담배를 말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쌈지에서 담배 가루를 꺼내야 하고, 작은 종이 위에 담배 가루를 적당량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말아야 한다. 나는 케티가 담배 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두컴컴했지만 모닥불이 있었고, 케티는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케티가 건네준 담배는 아주 짧았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담배는 또 언제 이렇게 피운 거지?’


이런저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대 놓고 배척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모닥불 파티라 해서 갔더니....오마이 갓! 그곳은...이른바 **소굴이었다


나는 케티가 건네준 담배를 아주 깊숙이 빨았다. 밥을 먹고 난 직후라 맛이 기막혔다. 두 번째로 깊숙이 빨아들인 뒤 케티에게 건넸다. 케티는 싱긋 웃더니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20대 중반의 사내였다. ‘왜 네 담배를 이 친구에게 주라고 하는 거야?’라는 눈짓을 하며 다시 케티에게 건넸다. 내가 두 번이나 세게 빨아서 그런지 담배는 거의 엄지손가락 손톱만큼 남아 있었다. 케티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채 오른쪽 사내에게 주라고 손짓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 사내를 쳐다보았다. 짧은 머리칼에는 노란색이 많이 섞여 있었다. 턱수염도 보기 좋게 나 있어 전체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뭐가 못마땅한지 사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에 힘을 준 채 정면의 모닥불만 노려보고 있었다. 케티의 말대로 사내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사내는 받지도 않고 인상만 쓰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피운 거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약간 몸이 이상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소주 두 병을 한꺼번에 마신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차' 했다.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오, 마이갓!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했다.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소지품을 챙겨 벌떡 일어났다. 몸이 휘청했다. 온몸의 뼈와 살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일어서기는 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비틀거렸다. 케티가 뭐라고 이야기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뒷마당에서 나와 식당 쪽으로 갔다. 종업원이 달려와 뭐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밥값은 누가 낼 것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웅웅 거리는 것이 느린 배속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정신은 무척 명료했다. 자연히 창피함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몸에 힘을 주고 똑바로 걸었다. 웬걸, 그럴수록 몸은 더 비틀거렸다. 한 마디로 통제불가였다.      


밖으로 나갔다. 길에는 시원한 저녁 바람을 쐬기 위해 나온 인도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반쯤 벗은 아이들은 이런저런 놀이를 하느라 종횡무진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나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아이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바보 같은 동양 녀석이 마약 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갔다가 아주 세게 빨았나 봐. 하하하’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 덜 비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방 열쇠를 꺼낸 뒤 손에 쥐었다. 저만치 보이는 숙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방문 앞에서 호주머니에 든 열쇠를 찾다가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통, 메스꺼움, 울렁거림


방문을 닫고 문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무척 아팠다. 속도 울렁거렸다. 말 그대로 방 안이 빙빙 돌았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흔들림이 심한 배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그 좁은 방에서 침대까지 가는데 한참 걸렸다. 침대가 자꾸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침대를 붙잡은 뒤 벌렁 드러누웠다. 머리가 바닥으로 갔다가 천장으로 갔다가 요동을 쳤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1시간쯤 누워 있었다. 조금 정신이 들었다.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곧바로 두통이 심해지면서 다시 어지러웠다. 도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느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피운 것은 말로만 듣던 ‘화씨시’였다. 대마의 잎이나 꽃을 말린 것이 마리화나라면 꽃대 부분에서 얻은 진액으로 만든 것이 화씨시다. 화씨시가 마리화나보다 환각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인도 여행 중 화씨시에 대해 많이 들었다. 도시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면 반드시 달려오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거지와 암달러상과 마약 장사꾼이었다. 이들이 여행자에게 던지는 영업 멘트는 인도 전역에서 통일되어 있었다.      


‘원 루피 플리즈!’

‘체인지 달러?’

‘화씨시?’     


이 세 멘트 가운데 가장 은밀하게 속삭이는 것이 마약 장사꾼이었다.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귓불 가까이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화씨시?’했다. 때로 비닐봉지에 싼 화씨시 덩어리를 슬쩍 보여주기도 했다. 언젠가 호기심에 얼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질이 아주 좋은 최상품이고, 100그램이 살짝 넘는데 100루피(당시 환율로 약 2,500원)라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는 물건이다 보니 잘 가늠이 안 갔지만 그렇게 비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약이었는데. 나중에 여행 중에 만난 일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도 화씨시를 구할 수 있는데, 100그램에 100달러쯤 한다고 했다. 


화씨시를 피우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페이퍼 담배를 말 때 중간에 쌀알만 한 화씨시 알갱이를 넣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꼭 여러 명이 둘러앉아 돌려가며 피운다고 했다. 그러니까 방금 그곳은 화씨시를 하는 전형적인 현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케티'와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변수가 끼어들어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캄캄한 방 안에서 모기가 웽웽거리며 얼굴 주변을 날아다녔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불을 켰다. 팔과 다리에 모기 물린 자국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혀 가렵지 않았다. 나는 팔을 살짝 꼬집어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좀 더 세게 꼬집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감각이 전혀 없었다. 감각뿐만 아니라 마치 뼈가 하나도 없는 연체동물처럼 느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몽롱한 것이 제법 기분도 좋았다. 뭐랄까, 소주를 몇 병 마신 다음 두통과 메슥거림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기분 좋은 상태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때 방문 밖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여자 두 명이 영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영어를 잘 알아들었나?’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간단한 영어는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복잡하거나 빠르게 이야기하면 잘 알아듣지 못했다. 밖에서 들리는 두 여자의 영어 대화는 빠른 데다 속삭이듯 작았다. 게다가 내용도 제법 복잡했다. 그런데 마치 모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영어 발음이 너무나 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마약을 하고 나면 청각과 미각이 순간적으로 아주 예민해진다고 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이브를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 둘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조금 청승맞다며 깔깔거렸다.      


고의성이 끼어들면 위험할 수도 있다


나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한국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영어라도 한국인이 하는 영어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비교적 발음을 분명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힘든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방금 내가 경험한 이 희한한 일을 한국말로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여성이고, 만약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게 그렇게 했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저항 불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허술한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두 명의 여성이 마주 보고 앉아 소곤거리고 있었다. 짐작과 달리 두 사람은 모두 금발의 서양 여자들이었다.   


“하이”


내 방문 쪽을 향해 앉아 있던 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인사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건넸다. 등을 보이고 있던 여자가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 지차 살짝 웃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 보이는 20대 여자들이었다. 동그랗게 땅을 조금 파낸 곳에 어른 팔뚝만 한 장작 서너 개가 삼각뿔 모양을 이룬 채 조금씩 타 들어가고 있었다.      


내 방 쪽을 향해 앉아 있던 여자가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영어로라도 뭔가 말을 하고 싶었던 나는 모닥불 가까이 앉았다. 그 순간,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여자가 모닥불을 좀 더 멋지게 피우려고 그랬는지 나무를 뒤적였다. 그런데 불꽃이 더 일기는커녕 꺼지고 말았다. 동시에 연기가 엄청나게 났다. 


어쩔 줄 몰라하던 여자는 불을 살리기 위해 입으로 세게 불었다. 내 쪽으로 연기가 확 날아왔다. 무방비 상태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말았다. 두통과 함께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손바닥으로 흙바닥을 짚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 동시에 속이 울렁거리면서 신물이 넘어왔다. 잘못하다가는 여자들 앞에서 속에 있는 것을 확인할 것 같았다. 두 여자는 갑자기 헤롱헤롱 거리는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한 뒤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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