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경계를 확인한 뒤 거래 계약을 한다
성공적인 전원생활은 좋은 땅을 구입하는데서 시작한다. 문제가 있는 땅을 사면 집을 짓기도 전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고생의 원인을 제공한 문제는 집을 짓고 난 뒤에도 해결되지 않고 계속 골칫거리로 남는 경우도 많다.
야트막한 야산 한 귀퉁이를 비교적 싼 값에 산 뒤 불도저와 굴삭기를 동원해 적당한 크기의 택지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전원주택 땅 분양업자들이다. 전원주택용 땅 분양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곳에 가보면 반듯반듯하게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길도 반듯하고, 이웃한 땅과의 경계용 축대도 반듯하다.
땅을 사서 집을 지어야 하는 예비 전원주택 생활자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양 그대로 자기 땅이 되는 줄 알고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거래를 한다. 살면서 한 번도 땅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아파트나 빌라에서만 살아 땅과 관련해 이웃과의 다툼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예비 전원주택 생활자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있다.
마음에 드는 땅을 구입하고, 사정이 허락해 집을 짓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하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이웃한 땅과의 경계 측량이다. 정확한 경계를 확인한 다음,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의 땅을 한 뼘이라도 침범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집을 헐어야 한다. 경계 분쟁은 도시의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지만 전원주택 생활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웃과의 경계, 도로와의 경계를 반드시 확인
눈에 보이는 땅이 '내 땅'이라 생각하고 샀는데, 측량을 해 보면 눈에 보이는 '내 땅'과 등기부 등본 상의 내 땅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필지 조성을 위한 토목 공사를 할 때 실제 경계와 다르게 축대를 쌓거나 구획 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지 분양 업자는 산을 통째 산 뒤 토목업자에게 구획 정리 공사를 맡긴다. 구획 정리 공사를 맡은 사람은 굴삭기와 돌(또는 보강토) 쌓는 기술자를 불러 구획 정리를 시킨다. 이때부터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공사 시작 단계만 해도 측량을 해서 곳곳에 박아둔 빨간 말뚝은 잘 보인다. 굴삭기 기사와 현장 기술자들은 그 말뚝을 기준으로 돌을 쌓아 이웃한 필지와 경계를 정하고, 단지 내 도로도 확보한다. 문제는, 처음에는 잘 보였던 측량용 말뚝이 공사를 하다 보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측량 표시용 말뚝이라는 것이 400미터 이어달리기 경주 때 앞 주자가 뒷 주자에게 넘겨주는 바통 만한 빨간 나무 봉이기 때문이다. 측량을 하고 나면 그 봉을 경계 지점마다 땅에 박아 두는데, 토목 공사를 위해 대형 덤프트럭이 수시로 드나들고 굴삭기가 흙을 파 헤치고, 큰 돌들을 쌓다 보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돌을 쌓아 경계용 축대를 쌓고 있는데, 측량용 말뚝이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현장 기술자들이 말뚝을 찾은 뒤 정확하게 경계를 확인하고 공사를 계속할까? 그럴 일은 잘 없다. 그 이유는 현장 기술자들이 그렇게 책임감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토목공사 책임자가 꼼꼼하고 정확하게 감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해가 있을까 봐 하는 말인데, 현장 기술자들이 책임감이 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건축 현장 생리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자연히 현장 기술자들은(돌 쌓는 기술자들과 굴삭기 기사 등) 말뚝이 안 보이면 찾아서 경계를 확인한 뒤 정확하게 쌓기보다 그때까지 쌓아 온 돌 모양을 보고 비슷하게 쌓으면서 구획정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전원주택용 택지는 대체로 이런 태생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집을 지으려고 이웃한 땅과의 경계 측량을 했는데 눈에 보이는 땅 모양과 실제 경계가 차이 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론 심하게 어긋나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100% 정확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땅을 구입할 때는 이웃한 땅과 내가 사고자 하는 땅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로다.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면 당장이라도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땅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도로도 잘 연결되어 있어 건축에 무리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암호문 같은 지적도
난생처음 땅을 사는 사람이라면 지적도를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반듯한 땅이지만 지적도에는 대지와 임야와 밭과 창고부지와 도로가 마구 뒤섞여 있다. 게다가 구거(하천)라도 끼어 있다면 도면은 더 복잡해진다. 도면만 봐서는 어디가 자기 땅이고 어디가 길이며, 어디가 이웃집 땅인지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부동산에서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제대로 알아듣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그냥 '눈으로 보고 온 반듯한 그 땅'이 자신이 사려고 하는 땅이라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등기부상의 도면을 들고 현장에 가서 자신이 사려고 하는 땅의 실제 모양이 어떤지 확인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도로다. 이웃과의 경계가 애매한 것은 조정이 쉽지만 도로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문제가 아주 복잡하다. 최악의 경우 집을 짓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장 확인은 아주 중요하다. 부동산 말만 듣고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이 의도적으로 속이지 않는다고 해도, 잘 모르고 중개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잘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난다고 해도 부동산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부동산이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 준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심리적, 시간적 피해는 상당하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계약 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하면 해결을 한 뒤 거래를 해야 한다.
계약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비교적 쉽고, 부동산이 전적으로 알아서 처리해 주기 때문에 전원주택 예비 생활자가 신경 쓸 일이 없다. 하지만 계약 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이 쉽지 않고, 전원주택 예비 생활자인 '내'가 신경 쓸 일도 상당히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