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도망을 쳤는데 말이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거라면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by 댜니

나의 9개월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고뭉치? 관심 사병? 무엇이라고 표현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첫 출근의 설렘 같은 감정은 어느 새 기억나지도 않게 되었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하는 신입 사원이 되었다. 3개월이 넘어갈 즈음 팀장님이 부르기 전까지 나는 내가 평범하게 수습 가능한 실수를 하고 있는 평범한 신입 사원인 줄 알았다.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면서. 콘텐츠 마케터. 내 머리가 굳어버리고 손이 멈춰버리면 디자이너의 업무조차 마비되어버리는 일. 그런 일을 담당하면서 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네, 네, 죄송합니다 를 반복하기만 했다.


실수가 잦았다. 이전의 경험과는 다른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버겁지만 남의 지적으로 마주한 ‘무능한 나’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것도 자의식 과잉이라면 과잉이겠지. 하지만 긴장감으로 시작한 자의식이 팽배해서 터져버리기 직전의 느낌은 아무도 나에게 주지 않은 중압감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과 비슷했다. 발판 삼아 성장할 실수가 너무 많아 발에 채일 정도가 되면 도리어 넘어질 일만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에 대한 감각보다 실패에 대한 감각을 먼저 익혀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사실 가긴 가는 게 맞는지 싶을 즈음에 팀장님께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일만 하면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그만 둬야 할 것 같다고.


회사의 일이라는 게 참 그렇다. 내가 실수해도 다시 일어날 시간도 없이 질질 기며 하루를 쳐내야만 한다는 게. 돈 버는 일이라는 것이 참. 하여튼 그런 게 일상이 되었다. 아니, 일상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도망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증상 아닌 증상들은 오히려 정상적인 직장인의 생활을 대변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숨이 막히는 사회에서 가슴이 답답한 일들을 목도하고 그것을 이 악물고 참아내는 일을 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흔하디 흔한 답답함. 그 답답함을 못 이겼고, 어쩌면 이길 생각조차 없었던 것 아닐까.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이미 젊음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고 이 위기를 뛰어넘기에는 재능도 체력도, 의지도 받쳐주지 않았으며 손에 꼽을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간절했던 것이 도망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인내심은 사실 도망이었다는 건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이다. 공연팀 3년 동안 나 혼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만들어 진이 빠졌을 때 나 혼자 어느 구석에 숨어 열심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난 3년 동안 도망을 친 거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거라면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이렇게라도 살아감에 만족을 하든가 바뀌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나는 일단 살아감에 만족해야 하는 낡고 지친 몸뚱이와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도망이라도 열심히 쳐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멈춰서 다시 길을 찾아볼 힘을 기르기 위해. 오늘도 저는 도망을 쳐보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