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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Nov 06. 2018

도돌이표

박정은 시인

도돌이표


   박정은




벽에 부딪히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는 꿈

우리의 까만 동공에 숨어있는 소용돌이, 소용돌이


기다림은 음악의 한 장르이며 반복되다 보면 리듬을 가진다

결국 많이 기다려본 자는 자기만의 리듬을 갖게 되지


세상의 끝에 닿아 타고 있는 배의 한쪽 끝을 부딪쳐 보고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내 방으로 되돌아올지 궁금하고


하얀 얼굴로 밤의 돌림노래를 부르는 환한 가로등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CCTV 속에 누군가가 있어서

계속 훔쳐보게 된다


산책과 여행이 어느 길에서 갈라지는 것일까,

나의 산책은 낡고 있다


다다르면 검은 강물만 일렁이는 곳에 그림자를 두고 돌아온다

우물 속을 한참 들여다보면 저쪽 세계에 닿을 것 같은 원근감이 느껴지고

손을 길게 뻗는다

어깨 위에 어둠이 내리면 투명한 벽이 보인다 그것은 거울의 감정


나의 노래는 같은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이곳이 진짜인지 알고 싶으면 마을 어귀를 넘어 차를 몰고 나가보라는데,

새벽까지 달리고 달려도 같은 곳을 돌고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알 수도 있겠지


나는 한 곡만을 재생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켜둔 채 잠들어 있다




계간《시와 정신》  

2018년 가을호






나는 그래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은데 저 사람을 좋다 싫다고 구분 짓기란 더 신경질 난다.
그의 속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다.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는 오늘도 그의 리듬에 맞춰 목이 날아간 인형 마냥 기이하게 절뚝거렸다.

나 자신의 쳇바퀴가 아니라 타인의 지겨운 노랫가사가 떠오르다니.
도대체 왜 당신은 매일 나의 귀를 더럽히는가.
짧은 언어 속에 담긴 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항상 창대하다는 당신의 자신감 덕분에 나는 뭐든 쉽게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내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을 섬기고 있어야만, 다음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걸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
정말 그 비밀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의 산책과 여행은 갈라질 수 없다. 애초에 걷고 있지 않으니까.

기다림으로 이기심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기심으로 실험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자발적 실험체인가. 아닌가.

구분 지을 수가 없다. 이를 깨닫기 전부터 목이 날아가있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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