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Oct 25. 2018

발의 과거

이초우 시인

  발의 과거


                                            이초우




  나는 참 말하기 싫은 내 발의 과거를 의사에게 털어놓았다.


  내 왼발은 언제나 마뜩찮은 오른발을 데리고

  지상의 음표를 찍으며 투벅투벅 다닌다.

  그러면서 내 두 발, 때론 새의 두 발처럼 지상을 떠나고 싶어 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 최후를 맞이한 연어의 주검을

  두 발로 낚아채

  외진 바위틈으로 이동하는 독수리의 사냥법도 배우고, 때론 이성을 잃은 군왕에게 상소를 하기 위해 떠나는 기러기 떼의 한 마리가 되기도 했다.


  한때 요량도 없던 젊은 두 발, 타이어 더미 위로 뛰어내리다

  내장 없는 타이어의 함정에 빠져 발목을 접질린 것이

  내 오른발의 과거

  두어 달 동안 번번이 버려두고 오고픈 오른발을 질질 끌며

  그날의 일수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때론 새의 두 다리처럼 뒤로 죽 뻗어 꽤 먼 길 떠나, 이천 일 동안 비행으로 목성을 돌아 에우로파의 어느 얼음 골목에 도달해, 자연 유산 뒤끝으로 일부 윤기 없는 옆구리 생살이 드러난, 누더기 옷을 휘감은 채 머리 파묻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엔*을 만나

  고흐의 소재를 묻기도 했지

  그날 밤 나는 어렵사리 고흐를 만나, 제 이름과 똑같은 형의 주검이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제 어머니 자궁 속 십 개월의 성장통을 묻기도 했다.


  쉽게 낫질 않는, 그래도 나는 치료를 해야 했다.

  어쭙잖은 헛디딤에 삐끗한 오른발, 골목에서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승용차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오른발 등을 넘어가고,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날들 그날의 일수를 탓했던가?

  오늘도 내 왼발 찌뿌둥한 내 미간 같은 오른발을 데리고

  뚜벅뚜벅 발의 역사를 소리로 기록하며 걸어간다.




*고흐의 작품 〈슬픔〉에 나체 모델로 나오는, 고흐와 1년간 동거한 여자.



월간《현대시》 

2018년 8월호



나는 그래

내가 걸어온 길은 너무나 지저분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의 말에 흔들린 탓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쓰레기가 저렇게 쌓일 리가 없었다.
차라리 내 발에 가득한 미련이 흘린 각질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빠는 잘되면 네 탓, 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고 꾸짖었다. 그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나에게 조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으니까.

바보같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기 시작했다. 친구는 다 그만두라고 했고, 나는 언젠가 그만두겠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상대방의 침묵이 익숙해졌음을 깨달았다. 

나만 모르고 있는 진실에 위로는 담겨있지 않음을 안 순간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발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약국에선 의사의 처방전 대신 비타민 음료를 하나 건넸다.

"당신은 쉽게 낫질 않을 것 같네요."

"악취의 원인이 절뚝거리는 저 사람에게 왔을까요. 아님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에게서 왔을까요?"

"글쎄요. 당신의 발에 얼마나 많은 이가 밟혔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전."

"그게 답이라면, 정말 하는 수 없군요."


매거진의 이전글 은둔형 오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