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빌
정현우
바닥에 장미가 범람한다.
입안 가시가 모인다.
여자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얼굴들이 뒤척이며 깨진 표정이 장미 넝쿨로 있다.
강물은 밤에 깊어진다.
수심을 기억하는 잎사귀는
빨강을 벗는다.
가시는 열리지 않는 비상구.
사람들이 손목을 긋고
몸속에서 빛의 줄기들이 자란다.
핏줄처럼 묶인 관계는 왜 끊어버릴 수 없는 걸까.
입술은 견고한 화상,
흉터 속에 있는 꽃의 틈.
포효하는 장미는 붉은 메아리
메아리,
울타리는 견고하다.
심장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몸속에 거시가 돋는다.
계간 《학산문학》
2020년 봄호
나는 그래
남의 잘못인데도, 헐뜯을 수 없어 나를 탓하는 사람.
끝까지 자기 성찰이란 말로 목에 가시를 두르고 마는 사람.
흐르는 피에, 늘어나는 상처에 웃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
이 시는 내게 그렇게 말한다.
잔혹한 말로 비참하게.
어떤 말로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무지한 행동이라도 나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부터 로즈 빌에 갇힌 지 몰라 혼란스럽다.
아니,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아 슬프다.
로즈 빌은 그런 곳이다.
옳고 그름을 용인하지 않는 울타리 안에 숨겨진 채, 기생하는 나의 내밀한 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