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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Dec 01. 2020

위험을 평정하다 / 한혜영 시인

진정한 위험. 살아있는 자들의 입.


위험을 평정하다 


    한혜영



어린아이가 핏불 테리어한테 물렸다고 한다

개의 눈에서는 위험이 철철 흘렀다고


거리엔 위험이 지나치게 많다

위험해, 위험해

두 팔 벌리며 막는 표지판도 그렇지만


빨리 달리는 것들의 위험

그런 속도를 막으려고 꽝꽝 얼린 거리

곳곳에 스며든 어둠,

그 캄캄함에 악어처럼 감추고 있는 것들


위험은 위험이 목적이어서

어디에서든 호들갑스러워야 한다

사이렌소리가 나야 하고

경광등이 번쩍거려야 하고


위험은 바깥을 조금 더 선호하지만

안도 위험이 살기엔 더없는 조건이다

기회만 있으면 귀신처럼 달라붙는

불과

물과

추락


도마에 올라간 소문은 얼마나 무서운가


위험해서 위험한 위험……


그러나 세상의 어떤 위험도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는 없다





시집 『검정사과농장』 (2020년 11월)





나는 그래

대화, 말속에 숨겨진 위험은 찾기가 너무 쉬워 탈이다.
누군가에게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보다, 하나뿐인 타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보다 쉽다. 그러니까 이래나 저래나 당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들의 조합만큼 살아있는 건 없다는 얘기다. 귀신이 아닌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머리로만 이해한 자들의 입에서도 위험은 팔딱팔딱 활어처럼 튀어올라 사방으로 영역을 넓힌다.

아 그럼 결국, 일분일초 숨 쉬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보다 위험한 건 없다... 는 건가?
그렇다. 처음엔 모를 수 있지만, 반드시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수많은 기발한 방법으로 모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반드시 알게 된다. 세상에 나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는 걸.
타인만큼, 나와 관계없는 인간만큼 날 그리고 이 세상을 위태롭게 하는 건 없다는 사실을.

굉장히 비관적인 것 같지만, 이를 모른 척하는 무지한 자이긴 싫다.
이 진실은 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처음엔 몰랐다. 내가 내 속에 무시무시한 칼을 갈고 있단 사실을.
언제든 꺼내 휘두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긴 후에야 알았다.
물론 그만큼 피를 흘렸기에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사실, 얼마나 무자비하게 내뱉고 다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 안의 두려움을 만들었다.

조치. 하는 수 없이 만들어야만 하는 방책.
다들 알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서로에게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찾아내 끊임없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법만큼이나 중요한 방식.
호들갑을 떨면서 빨간 신호를 보내는 것보다 더 긴박하게 행동해야 하는 일.

격하게 말하면, 입을 틀어막는 일이고
격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쏟아지기만을 기다리는 목구멍이 아닌 마음을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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