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절대 숨어있지 않는다
나는 그래
새벽 4시가 나에겐 가장 큰 고비이자 하루의 끝이다.
4시를 기점으로 그날의 나의 심리 상태가 결정된다.
그 시간 이후로 잠에 들든, 잠을 자지 못하든 결과는 똑같다.
중요한 건 잠이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중요하다.
4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나는 많은 걸 한다.
난 어젯밤부터 시작해,
기괴하고도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하루 24시간을 쪼개 이틀을 산다.
남들이 보내는 하루가 나에게 이틀이다. 그동안 내가 만든 습관이다.
찝찝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신이 나고 즐겁기도 하다.
시인의 언어처럼 다시 만져 볼 수 없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볼 수 없어 슬프고 외롭기도 하다.
시간의 보복은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뜰 때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다.
나는 정확히 그 보복이 겨우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을 바라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다.
내가 단 것을 좋아하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며,
책을 좋아하지만 사실 표지와 첫 문장만을 보고 선택한다는 사실과
기억하는 걸 가장 못하지만, 단기 암기 실력만큼은 좋아 수많은 혜택을 누렸단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시작되지 않은, 출발선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내가 누구인가란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도 모른척하면서
기다린 아주 무서운 놈이다.
내가 무얼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생각하기 전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심하기 전까지.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결정하기 전까지.
시간은 계속 기다렸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자신의 이점을 이용해,
나의 정면에 자리를 틀고 앉아 기다려왔다.
내가 까먹은 시간을 스스로 저장하고 곱씹으면서.
후회와 절망을 전달하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더 살 시간을 위해,
과거의 시간들이 힘을 합쳐 친히 '보복의 시간'을 준비해왔던 거다.
그 결과, 시간의 보복은 나에게 이틀을 하루로 사는 걸 선물했다.
하지만 혼란스럽다.
괴롭다 해야 할지, 괜찮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냥 힘들지도 않지만 좋다고, 만족한다고는 말하긴 힘들고 어렵다.
그 애매한 느낌 때문에, 시간의 보복을 뭐라 정의할 수가 없다.
궁금할 뿐이다. 나는 그것을 잘 통과하고 있는지.
시간을 본 순간부터 시작되는 보복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의할 방법은
죽음 바로 직전일 거다. 그전까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연컨대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살다'의 반대말이 '죽는다'가 아니라는 걸.
시간의 보복은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받아들이다',
'살다'의 반대말은 '받아들이다'다.
모든 걸, 계속될 사건을, 이어질 관계들을 전부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시간의 보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작은 시곗바늘이 4로 가있는 걸 보며,
그제야 하루를 마감하는 나를.
시간은 당신을 기다린다. 언제 보복이 시작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은 절대 숨어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