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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l 06. 2017

우아한 사랑의 단면을 알다

'서로에게 응답하는 사랑'이란 매력적인 공식

 <캐롤> (2015) /  감독: 토드 헤인즈  /  영국 외  /  드라마  / 118분  /  청소년 관람불가  


 



  우아한 사랑의 단면을 알다


 


  사랑이 우아함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사람이 그 우아함을 사랑에 불어넣은 걸까.

  이 영화는 내게 이런 물음을 갖게 했다.

  즉, 난 근본적으로 우아하며 섬세한 사랑의 단면을 <캐롤>을 통해 알게 된 것 같다.


  <캐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캐롤과 마음속 ‘진심’을 구분하지 못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테레즈의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들의 사랑은 극단적이면서도 매력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우아하다.

  덧붙이자면 전자는 테레즈, 후자는 캐롤의 사랑 방식이다.


  장난감 상점에서 두 여자는 처음 만난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 그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서로에게서 떼지 못한 눈빛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본능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을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꼭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지만, 현실 속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생각해보자, 장갑을 택배로 보내주고, 감사인사로 점심을 같이 먹고, 서로의 집에 방문하고 여행을 단둘이서 떠난다.

  이 모든 게 한 번의 눈빛 교환으로 일어났다!


출처 : 영화 <캐롤> 중

  엄밀히 캐롤에게 딸은 본인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끊임없이 테레즈와의 관계를 딸의 양육권 문제로 고민하지만, 결국 자신의 본능을 따르기 때문이다. 딸에 대한 사랑이 거짓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갖는 잠재적인 본능에 충실함으로써 그녀 자신의 존재를 찾는 것이니까. 따라서 그녀의 행보가 이기적이거나 몰상식해 보이지 않는다.

  우린 점차 그녀가 화려한 색감의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게 다.


출처 : 영화 <캐롤> 중

  반면 테레즈는 진실한, 아니 자신이 믿는 진짜 사랑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다.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조심하고 또 움츠린다. 결혼하자는 남자 친구에게 오죽하면 “나랑 사랑을 한 적 있어?”라고 물어볼까. 그런 그녀가 캐롤을 만나면서 조금씩 진짜 사랑을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 간에 갖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사랑을.

  테레즈는 캐롤의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조금씩 ‘진짜 테레즈’를 알아간다.

          



  감독은 1950년대 과격한 시대의 아름다움, 예기치 못한 사랑의 단면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난 이 영화의 배경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캐롤> 속에 보이는 배경이나 각종 소품들, 심지어는 의상까지도 가슴 깊이 새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드 헤인즈는 일부러 카메라의 초점을 철저히 인물들에게만 맞췄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인물들의 모든 표현을 자세하고 섬세하게 볼 수 있었다. 즉, 인물의 사소한 감정표현이라도 허투루 보여주지 않겠다는 치밀한 그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캐롤>이다.


  <캐롤>의 명대사를 꼽자면, 캐롤이 테레즈에게 말한 이 한마디다.

  “신기한 사람 같아요. 당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명장면은 영화 후반부 테레즈가 캐롤의 부탁을 거절한 직후 친구의 파티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눈빛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그 후에 캐롤에게 달려가는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은 단연 아름다웠다.




  물론 어느 순간 확 깨져버리는 환상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끝, 마지막으로 모든 중심이 캐롤이었다는 점이 아쉽다. 따라서 포스터에서 설명하는 ‘당신의 마지막 나의 처음,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사랑’이란 말은 너무 과한 해석이 깃든 말이 아닐까 한다.

  이들의 사랑은 경계가 없다. 언제나 자유로워하는 캐롤과 이제 막 진짜 사랑을 안 테레즈니까. 한마디로 이제 겨우 시작한 사랑에 괜히 초를 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우아한 사랑에 관한 물음뿐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 우아함마저도 캐롤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이 가진 아우라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난 <캐롤>을 잘 봤다고 생각한다. 그 우아함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나름대로 다시 <캐롤>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면 ‘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극단적이면서도 매력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우아한 사랑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팁?도 주고 싶다. 첫눈에 반하는 환상적인 만남과 제안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이란 표면적인 공식에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사랑’이란 매력적인 공식으로 변한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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