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만 알면 돼.
아마랜드 / 김지명
이곳을 떠난 적 없이
이곳에 속한 적도 없이
회전목마를 탔다고 했다
선택받지 못한 순간에도
떠밀려 어울린 공간에도
불가능한 램프는 가로등처럼 켜져 있었다
익숙한 뒤통수 얼굴을 따라가 보면
백야 같은 감정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꿈꾸는 바보처럼
목마는 하루치 분위기를 먹고 산다고 했다
어설프고 들뜬 색깔은 나의 기후구라고 했다
물먹은 구름이 바람을 만나면
실시간 어떤 현실을 쏟아 낼지
입장을 대변할 펜촉은 있는지
버려진 밥통이었다가 음식을 기다리는 젓가락이었다가
이어진 행진곡으로 목마는 달린다고 했다
목마는 멀리서 보면 앞으로 전진하고 있을 것
화분 안의 개미는 화분 밖의 세상을 몰라도
진딧물 목장 차려 놓고 휘파람 부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 보는 일이라고 했다
봄이 정거장을 만났을 때 꽁꽁 얼어 있었다
가을이 정거장에 내렸을 때 만각의 더위를 씻고 있었다
좋아하는 말들이 달아났다
입을 열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의 길을 벗어난 해찰이
너에게 가까워지는 방식
목마는 아마도가 기항지라고 했다
연일 실측하고
연일 실축하는
파란시선 0080
김지명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2021년 6월 15일 발간
나는 그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주어를 소실한 자아에게 시간은 폭력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달까.
난 항상 두 발로 꼿꼿하게 서서 두 팔이 저지른 만행들을 봐야 했다.
어리석은 행동들의 끝엔 언제나 땀에 절어버린 발바닥이 있었고
제 발바닥으로 만든 고행길이 드러났다.
남들은 절대 알 수 없고, 걸을 수도 없는
무수하게 남겨진 선택들의 잔해, 그 발자취.
시간은 간다. 흐르고 흐른다.
내가 방향을 잃었을 때도, 늘 있는 일이겠거니 하며 간다.
처음부터 시간에겐 없는 옵션이라 도망가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기에,
시간은 늘 당당하다. 초조해하는 것도 여유를 부리는 것도 나의 몫일뿐이다.
.. 하루를 사는 걸까. 하루살이처럼.
끝이란 말은 알지도 못하면서,
시작을 위해, 그 시작에 목메는 나를 위해,
끝이란 단어 하나를 그냥 세워놓은 건 아닐까.
나는 어디쯤 왔을까.
내가 그때 탔던 회전목마는 '아마'도 끝으로 만들어진 형상이었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내겐 목줄이 없었다.
잊고 있던 걸 다시 알게 되는 건 참- 다시 버려지는 기분이다.
아마도 나는 일어나겠지.
목마가 떨군 나를 주워 담아서 다시 목줄을 찾을 지도.
똑같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만 알면 되지 않을까.
그게 너랑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