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란 Jan 17. 2022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 안희연

내 황금빛 따위는 내 죽음보다 오래가야 한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안희연 




죽은 

밟힌

 

눈만 그리면 완성될 그림을

수천장 가지고 있는 사람


서랍을 열면 황금빛 새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고


모두가 새의 황금빛을 이야기할 때

죽은 듯이라는 말을 생각하느라 하루를 다 쓰는 사람


내게는 그런 사람이 많다


창밖이 너무 환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너머의 너머를 바라보느라 진흙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사람


씨앗이라고 생각했다면 영원히 캄캄한 

비밀이라고 믿어왔다면 등 뒤에서 나타나 당신을 할퀴는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파묻힌 발을 쓰다듬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착을 모르는 시계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

이야기 이야기







창비시선 446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2020년 7월 24일 발간 (초판)





나는 그래

내게 미래는 여전히 내일과 몇 년 후로 나뉜다. 
똑같이 미래를 꿈꿔도 늘 다른 결과가 나올 거란 불안을 품고 사는 요인이다.
그 쓰임도 활용도 너무나 달라서 나의 미래는 꼭 두 가지 이상의 길이 있는 것 같달까.
당연한 얘기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 미래란 가능성을 제외하면
명백하게 단 하나의 오늘일 뿐이다. 단 하나의 오늘.

문젠 불길함이 꼭 '내일'에만 도사린다는 것이다.

무릇 계획은 멀리 보고 세워야 한다면서,
늘 그렇듯 일주일 계획을 세우는 나에게 '몇 년 후'는 먼 얘기다.
내일은 항상, 매번, 자연스럽게 오는데 그놈의 몇 년 후는 오질 않는 거지.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게, 위로가 되는 시기가 지나서일까.
아직 그 순간을 맞이할 만큼 준비가 되질 않아서일까.
난 내가 현실 속에 사는 걸 잘 알면서, 현실의 룰을 거부하는 데 도가 텄다.

조급함과 믿음의 사이에서 내가 배운 건 그런 것이다.
딱 떨어지는 실내화를 신고도 넘어져야 하고
가만히 멈춰 서서 꼭 마지막에 그릴 눈만 빼고 그림을 그리고
황금빛 새가 죽은 듯이 전시되어있다는 말에만 관심을 쏟고
또 아무렇지 않게 딱 맞는 옷을 입고 갑갑해 하는.

소란스러운 기억이 내일에 내일을 덧씌울 때 
어떻게 나는 계속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걸음일까 하면서도
나아간다며, 나아간다며, 나아질 거라며 믿고. 

우린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에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걸음이라 여긴다. 그렇게 믿기 위해 믿는다.

정체된 이야기에서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야 하는 주인공. 
해서,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될 때, 
오늘을 넘기기 위해 기어코 눈을 그려야 한다. 끝마쳐야 한다.

그렇게 내일을 반드시 몇 년 후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위해서라도,
내 황금빛 따위는 내 죽음보다 오래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랜드/ 김지명 시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