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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란 Jul 23. 2017

'나는 끔뻑거리기만 했다'

<그 후> 우린 그저 관망할 수밖에 없다

<그 후>(2017)  /  감독: 홍상수  /  한국  드라마  /  91분  / 청소년 관람불가

     


  ‘나는 끔뻑거리기만 했다’


     


  <그 후>엔 두 관점이 존재한다. 책임보단 본능대로 사는 삶이 진정한 인간적 자유라 말하는 남녀의 관점과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 여성의 관점이 서로 뒤엉켜있다.

 

출처: 영화 <그 후> 중

  

  봉완과 창숙은 사람들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들이라 말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폭로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세상이 완벽해지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길을 잃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봉완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작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신의 거취를 두고 여전히 고뇌한다. 사색이 많아졌고, 말이 줄어들면서, 표정 변화도 없어진다. 아내의 현실은 허상이 되었고, 그의 쪽지 한 장은 모든 인물의 존재 이유를 뒤집어놓는다.


  그에게 세상의 빛은 오직 ‘사장님’이란 직함뿐이었고 아름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처음부터 봉완이 구분하지 못한 실재와 믿음의 충돌에서 발생한 잔여물의 피해자 아름. 그녀의 존재는 곧이어 비겁한 그들의 완벽한 사랑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꼭 그곳에 맡기곤 온 물건이라도 있는 듯 끊임없이 돌아가려는 두 사람. 우리만의 세상이 있다고 믿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언제든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봉완과 창숙의 사랑은 강렬함을 넘어 그들에게만 완벽하게 실재하고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저 진실을 덮은 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실재와 존재에 관해 얘기하고, 사랑이 주는 좌절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두 남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친 호흡으로 사랑한다 말하고, 죽을 듯이 부둥켜안는 것뿐이다.  


  허상을 가득 품은 채로 맞이했던 시간이 어느 순간 거품처럼 사라진다. 결국, 산산이 조각난 사랑. 예쁘게 깨졌든, 요란스럽게 깨졌든 결과는 “아내가 그 집으로 딸아이를 엄청 예쁘게 입히고 데려왔더라고요. 그때 결정했죠. 딱 딸아이만을 보고 살기로 했어요.”다. 그는 원래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고, 마치 그 길을 이제 깨달은 것처럼 태도를 바꿔버린다. 봉완에겐 거품은 사라진 게 아니라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어려운 척 잊어버리고, 모르는 척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그 날에 대해. 초연한 모습으로 그 후를, 아름을 맞이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은 아름뿐이다. 인간의 고독과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당당한 여자. 자기 자신을 충실히 사랑하고 존중하는 여자. 현실에 수긍하면서 그 상실과 허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여자. 그녀는 앞으로도 웃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맨몸으로.


     

출처: 영화 <그 후> 중


  <그 후>만의 특징은 흑백영화란 점과 단 한 곡의 배경음악만을 극소수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흑백으로 인해 어떠한 것도 그들(봉완과 창숙)의 이야기에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 그들의 민낯을 까발리는데 집중하는 것보단 지극히 인간의 숨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고집스럽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감정이 고조되기 전까진 어떠한 음악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인물들의 의미 없고 초연한 말들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나에게 <그 후>는 사실 불륜을 다루는 여타 다른 영화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도 눈길이 갔던 것은 카메라가 태풍의 눈이 되어 인물들의 삶을 그저 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는 혼자 고고하게 인간들의 소란스러운 내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을 떠나 전혀 관심 없는 자세로 관객을 눈만 끔뻑거리게 하는데 모든 힘을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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