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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 윤병무 시인

©윤병무 시집,『고단』2013

by 우란

양말 / 윤병무



해질 무렵

일손 놓고 집을 나선다


운동화 끈 동여매는데

양말이 짝짝이다


북어를 암컷 수컷으로 고르지 않듯

양말도 왼발 오른발 따로 없는데

왜 짝을 맞춰 신는 걸까


사람들 관계도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면 만나도 서로 어색하듯

양말도 제 짝이 아니면 불편한 것인가


유원지에서 두리번거리며 혼자 울고 있는 아이처럼

한번 짝짝이로 헤어지면 제 짝을 만날 때까지

내내 엇갈리는 것이다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9

©윤병무 시집,『고단』2013

111쪽



나는 그래

순간이지만, 찰나임을 알지만 불편해지로 하자.
모두에게 모두가 짝이 아님을 잘 아니까
나의 짝을 찾기 위해
조금은, 아니 이따금 마음이 어렵더라도.

하필 나를 만난다.
밤에만 손을 들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나오는 나는
내가 어제 모른 척했던 나일까.

불편하지만, 마음을 먹었으니
오늘은 함께 집에 들어가기로 하자.
모두가 너와 짝을 이루고자 할 때,
나는 수없이 외면해 왔던 내 손을 잡기로 하자.

잡고 나면 알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양말을 딱 한 종류로만 산다.
그들끼리는 매일 엇갈려 서로에게서 멀어지고자
난리를 피우지만, 그들도 그렇게 안정과 화해하겠지.

'왜 짝을 맞춰 신는 걸까'
왜 다들 '제 짝을 만날 때까지 내내 엇갈리는' 걸 그만 두지 못할까.

난 나름 내 방식대로 신고 벗고,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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