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젊은 화가와 귀족 여인 > # 1
1445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부근에서 가죽 가공업을 하는 집에 아들로 태어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c. 1445~1510). 그는 13살 때에 피렌체의 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인 마소 피니게라(Maso Finiguerra)에게 처음으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보티첼리의 아버지는 회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아들을 당시 피렌체에서 유명했던 화가이자 수도승이었던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의 화실로 보낸다. 필리포 리피는 피렌체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가이자 부자였던 메디치가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 가문의 수녀원과 교회를 위한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였다.
보티첼리는 16살이 되던 해인 1460년까지 필리포 밑에서 도제(徒弟)로 일하며 훈련을 받았다. 필리포 리피의 프레스코 작품 <동정녀의 죽음(Death of the Virgin)>에서 중앙의 인물이 화가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스승 리피의 그림은 섬세하면서도 선(線)이 선명하며 여성 인물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스승의 화풍은 제자의 그림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보티첼리의 작품 이해에 의미 있는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필리포 리피의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인 <아기를 안고 있는 마돈나와 성 안나의 생애의 장면들(Madonna with the Child and Scenes from the Life of St Anne)>을 감상해 보자. 우선 이 작품은 둥그런 패널 안에 그림을 그려 넣은 톤도(Tondo) 즉, 원형 회화다.
톤도의 정 중앙에 성모자를 배치시켰고 그 뒷 배경 좌측에 성 안나가 마리아를 출산한 장면을, 우측에는 요아힘과 안나가 황금 문 앞에서 만나는 모습을 묘사했다. 스승 필리포 리피의 이 작품은 훗날 보티첼리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보티첼리의 <바다의 마돈나(Madonna of the Sea)>는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한다. 희미한 배경에는 배가 한 척 등장하는데, 바다 또는 항해와 관련된 도상으로 해석된다. 보티첼리가 30대에 그린 <마돈나와 아이(Madonna and Child)>와 비교해 볼 때 <바다의 마돈나>에 묘사된 마돈나의 표정과 자세는 상대적으로 굳어 보이고 그녀의 의상 주름은 뻣뻣해, 전체적으로 경직 감이 느껴진다.
보티첼리는 25살 때 자신의 작업장을 갖기 전까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29~1498) 밑에서 도제식(徒弟式) 공방(工房) 생활을 한다. 19세기 유럽 학파(European school)에서 제작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생애: 베로키오의 공방 학생들>을 보자.
화면 좌측에는 베로키오가 1473-1475년 경 제작한 청동(Bronze) 조각상 <젊은 다비드(The Young David>가 서있다. 우측에 모자를 쓰고 팔레트(Palette)를 들고 있는 베로키오가, 다 빈치 등 제자들에게 작업 지시 또는 교육 중인 장면으로 여겨진다.
공방의 조수나 제자들은 공방(Bottega, Studio) 경영자인 스승 밑에서 계약한 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노동)을 수행했다. 그리고 조수들은 그 대가로 학습 기회와 숙식 등을 제공받았다. <베로키오의 초상화(Portrait of Verrocchio)>는 1504년 경 그의 제자 라파엘로 산치오 또는 로렌조 데 크레디(Lorenzo di Credi)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베로키오의 제자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보티첼리 등이 있었으며, 페루지노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의 스승이기도 하다.
당시 보티첼리는 스승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났다. 다빈치는 보티첼리보다 7살 어렸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리며 친분을 쌓았다. 그들은 스승에게 예술적으로 영향을 받았듯이 보티첼리와 다빈치도 서로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베로키오의 여성의 헤어스타일을 정교하게 묘사(drawing)한 <여인의 머리(Head of a Woman>를 감상해 보자.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다물고 있는 여인의 차분한 얼굴은 고요함을 넘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보티첼리의 <봄(Primavera)>에 등장하는 '비너스의 머리'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의 머리 연구(St. Anne's head study)'로도 불리는 <마돈나의 머리(Madonna's head)>를 나란히 감상해 보자.
시인 화가로도 불렸던 보티첼리는 풍부한 세부 묘사와 우아한 형태감 그리고 조화로운 색채감을 구사하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화가다. 그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을 감상해 보자.
이 작품은 보티첼리가 고대 시인 호메로스의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찬가’에 감동을 받고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여신 비너스의 탄생 장면이 아닌, 여신이 탄생한 후에 그녀가 커다란 조개껍질을 타고 키테라 섬(the Island of Citera)으로 이동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조개는 벌어진 껍질 모양 또는 독특한 속살의 생김새로 인해, 고대부터 여성의 생식기나 생식력을 의미했으며 번식과 다산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기원전 3세기경 헬레니즘 시대, 아티카의 테라코타 조각상 <무릎을 꿇고 있는 아프로디테(Aphrodite kneeling in a Shell)>를 보자.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가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os)의 바람에 실려 타고 온 가리비 껍데기는 생명을 잉태한 자궁이자 지상에 안착을 돕는 배인 셈이다.
이 작품에서 보티첼리는 금속세공 작업장 출신답게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시도를 통해 조개껍질의 상징성과 미의 여신 비너스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혁신적인 화풍(畵風)을 선보였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모델은 대부분이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다. 화가는 평생 그녀를 짝사랑했다. 시모네타가 죽음 뒤에도 그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초상화 등 미술 작품으로 사모하는 마음을 달랬다.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한 비너스와 <석류의 마돈나(Madonna of the Pomegranate)>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역시, 모델이 동일 인물인 시모네티로 여겨지고 있다.
그가 목판에 템페라로 완성한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Woman)>를 감상해 보자. 독일의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이 작품을 두고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이상적인 초상화라고 최초로 제안했다.
덕분에 이 작품에는 <이상화된 여인의 초상, 시모네타 베스푸치 님프의 초상(Idealised Portrait of a Lady,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as Nymph)>이란 제목이 따라다닌다.
여인의 머리 상단에는 브로치와 흩날리는 깃털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에는 수많은 진주알이 정교하게 박혀있다. 이처럼 보티첼리가 그림의 선(line)을 장식적으로 세밀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릴 적 피렌체에서 작업장에서 금세공사(goldsmith)의 지도를 받으며 금속 세공품들을 다루는 훈련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모네타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Medici)의 정부(情婦, 애인)였었다. 그녀의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는 고대 카메오(ancient cameo)를 모방해 제작한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이다. <아폴로, 마르시아스 & 올림포스(Apollo, Marsyas & Olympos)>를 감상해 보자.
'네로의 인장(Nero's Seal)'이라 불리는 이 정교한 보석 조각은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가장 귀한 6개 보석 중 하나다. 이 펜던트는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의 다른 어떤 보물보다도 많은 예술가들과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필리포 리피는 <성모의 대관식(Coronation of the Virgin)> 등장인물 속에 갈멜산 수도원(Carmelite Monastry) 수도승의 예복을 입은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형상이나 인물을 다소 지나치게 치장하거나 형태(form)를 힘찬 라인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던 스승 필리포 리피의 화풍은 제자인 보티첼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먼저 필리포 리피의 템페라화 <성모자와 두 천사(Madonna and Child with Two Angels)> 부분도를 감상해 보자. '우피치 마돈나(Uffizi Madonna)'라고도 불리는 이 성화는 리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는 그림 중 하나다.
얇은 베일을 쓴 성모가 아기 예수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있다. 우아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신의 어머니보다는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풍긴다. 등장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창틀 너머로 플랑드르 풍의 경치가 펼쳐져 있다.
리피의 성화 <성모자와 두 천사>가 완성된 후, 곧이어 보티첼리도 성모자와 천사가 등장하는 작품을 그렸다. 산드로 보티첼리(Attributed to)의 <두 천사와 함께 있는 마돈나와 아이(Madonna and Child with Two Angels)>를 감상해 보자. 작품의 전체 주제와 등장인물들의 구성이 매우 유사해 보인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아기 예수가 좌우 천사들에 의해 성모에게 바쳐지고 있다. 얇은 베일 등 화려한 머리장식과 넓게 드러난 이마 묘사는 필리포 리피의 성모와 비슷하지만, 성모의 머리 위 후광(halo)은 금빛 문양을 새겨 넣어 뚜렷하게 차별화했다.
성모는 아기를 받아 들기는 했으나 역시 시선은 아래를 향한 체 예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감상자를 바라보는 날개 달린 천사의 포즈도 스승의 천사와 닮았다.
스승 필리포 리피처럼, 보티첼리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화가로 유명하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프로필 초상화, 아마도 시모네타(Profile portrait of a young woman, probably Simonetta)>를 감상해 보자.
이 초상화의 실제 모델은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미인이며 보티첼리가 짝사랑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다. 그녀의 머리 장식과 고급스러운 의상에서 예상되듯 시모네타는 항구 도시 제노바의 귀족 출신이자,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의 부인이다.
시모네타는 보티첼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캐릭터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그녀는 피렌체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받았으며 예술가들과 인문주의자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시모네타의 달콤한 눈에서 불꽃처럼 반짝이는 사랑의 영혼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 르네상스 인문 주의자, 이탈리아 시인 / 안젤로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화(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를 감상해 보자. 고대 주화 속 인물처럼 제작한 시모네타의 옆모습 초상이다. 그녀가 사망한 지 14년 전후에 그려진 초상화이기에 실제 주인공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배경에는 구름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중앙의 짙은 구름이 옆얼굴과 만나는 구성은 그녀의 윤곽선과 깨끗한 안색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당시 유행을 따른 헤어 스타일인 듯 이마는 넓고, 공들여 땋은 머리 위에 진주와 리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특이한 점은 여인의 목에 뱀이 둘러져 있고 가슴은 양쪽 다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순환하는 고리 모양을 하고 있는 작은 뱀은 시모네타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속성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이 작품을 보고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상체와 유두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뱀 도상을 강조하며 이 초상화의 주인공을 뱀에 물려 자결한 고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로 간주했다. 과연 화가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미녀 시모네타와 기원전 30년 미녀 클레오파트라 중 누구를 그린 것일까?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The death of Cleopatra)>을 감상해 보자. 그림의 주제는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와 함께 자살을 준비하는 생애 마지막 순간을 그렸다. 그녀는 가슴에서부터 피부가 서서히 대리석 색으로 변해가면서 죽음에 이르고 있다.
시모네타는 제노바 명문 집안 출신으로 15살 때 피렌체에서 권력과 재력을 갖춘 가문인 베스푸치 집안(Vespucci family)과 결혼하기 위해 피렌체로 왔다. 그리고 그녀는 18살에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와 결혼한다.
시모네타의 아름다움은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메디치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메디치뿐만 아니라 보티첼리까지 사로잡았다. 베스푸치 가문과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으며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보티첼리는 이 무렵 시모네타를 만나게 된다.
붉은빛이 도는 금발 곱슬 머리카락과 눈부시게 흰 피부 그리고 매력적인 몸매의 시모네타. 친절한 말과 행동까지 겸비한 피렌체 최고의 미인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본 보티첼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화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만 있었을 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한낱 그림쟁이였다.
엘리너 포르테스쿠- 브릭데일(Eleanor Fortescue-Brickdale)의 1922년 유화 <보티첼리의 작업실: 줄리아노와 로렌조 데 메디치가 제안한 시모네타의 첫 방문(Botticelli's studio: The first visit of Simonetta presented by Giulio and Lorenzo de Medici)>를 감상해 보자.
왼쪽부터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o de' Medici),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등장하고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초상화 <라 벨라 시모네타(La bella Simonetta)>를 감상해 보자.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인들을 존중했던 시모네타. 그리고 보티첼리의 예술 세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그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난 당신 (예술)의 비너스가 될 것이오.”
그녀가 보티첼리에게 보인 특별한 관심은 그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모네타를 남몰래 연모하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고백하지 못했다.
1475년 산타크로체 광장에서 열린 말 경주대회에서 '미의 여왕'으로 선정된 그녀를 향해 군중들은 '라 벨라 시모네타(La bella Simonetta)' 즉 '아름다운 시모네타'를 연호했다.
조반니 시뇨리니(giovanni signorini)의 <팔리오 데이 코치(Palio dei cocchi) 또는 전차 경주>를 보자. 19세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Piazza Santa Maria Novella in Florence)에서 열린 로마시대 전차와 같은 마차를 타고 경주하는 모습과 주변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제노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시모네타는 피렌체 유력 가문과 결혼하기 위해 15세 때 피렌체로 온다. 18세가 된 그녀는 메디치 가문의 측근이었던 마르코 베스푸치(Marco Vespucci)와 결혼한다.
보티첼리의 <팔라스 아테나와 켄타우로스(Pallas Athene & Centaur) >를 감상해 보자. 한 여성이 오른손에 화려한 미늘창(일명 도끼창)을 들고 측은해 보이는 켄타우로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
팔라스 아테나(Pallas Athene)는 로마의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다. 아테나의 흰 드레스에 새겨진 세 개의 맞물린 고리(다이아몬드 반지를 연결한) 문양은 메디치 가문의 문장(symbol of the Medici family)이다.
그녀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머리와 상체에 두르고, 수호자의 상징이기도 한 미늘창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아테나의 모델이었던 신부 시모네타는 20대 초반 신혼생활 무렵, 당시 젊은 여성들이 자주 걸리는 질병에 감염된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에 등장한 모델이 시모네타로 추정되고 있는 화관을 쓴 클로리스(Chloris)를 보자. 콜로리스는 '창백한 녹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클로로스(χλωρός)에서 유래했다.
빈혈로 인해 얼굴이 창백해지고 쉽게 피로감에 빠지는 질병인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던 그녀는 22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 화가 보티첼리에게 많은 영감을 부여했던 뮤즈(Muse)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시모네타를 애도하며 그녀를 모델로 다양한 헌정화를 그렸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들을 시모네타에게서 영감을 받았거나 그녀를 모델로 삼아 그린 작품들이다.
그중 하나인 <석류의 마돈나(Madonna of the Pomegranate>를 감상해 보자. 화면 중앙에 성모 마리아가 앉아있고 그 양쪽에 세명의 천사들이 대칭으로 배치되어있다.
성모 마리아 무릎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가 왼손에 한 입 베어 먹은 석류를 쥐고 있다. '시거나 쓴 석류'는 '인간의 타락과 예수의 수난'을 의미한다.
또한 '석류의 붉은 씨'는 인간을 위해 예수가 흘린 피 즉, '보혈(寶血)'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기 예수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보티첼리는 석류 상단, 왕관 모양의 껍질 도상으로 아기 예수의 존귀함을 시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