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이 Dec 06. 2018

어느 한 부부의 이야기

사랑의 장면들




겨울이 넘어올까 망설이는 어느 가을날 서촌 어귀에서 아빠를 만났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식당 문간 자리에 겨우 앉은 우리는 외투 벗을 틈도 없이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시켜 먼저 나온 밑반찬을 안주 삼아 벌써 반 병 가랑을 비웠습니다. 밑반찬 중에 푸릇푸릇하고 향긋한 어느 나물의 이름이 궁금하여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답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렇게 현명하고 모르는 것 없고 예쁘고 가끔은 귀엽기까지 한 여자를 어떻게 만나 결혼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지 슬며시 웃으며 엄마가 인기가 너무 많아서 데이트하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었다고 했습니다.   

   


둘이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날 휴가를 내게 되었다나요. 그는 한참을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넌지시 물었던 모양이에요. "나랑 저어기 어디 가서 밥 먹고 놀다 오지 않을래?" 그녀가 쉬이 좋다고 할 줄 몰랐던지 한참이 지나 그때를 떠올리는 그의 표정은 지금도 너무도 놀란 표정이네요. 지금의 나보다 젊었을 그와 그녀는 하루 종일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구경도 했나 봐요.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촉석루 앞 도로에서 신호 대기를 기다리고 서 있다 문득 조수석을 보니 그녀가 피곤했는지 쌔근쌔근 자고 있더래요.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예쁘기도 했지만 자기를 믿고 곤히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니 평생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커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닭살이라고 난리를 쳤겠지만 그 마음을 30여 년 동안 잘 지켜온 과정을 본 나는 이야기를 하며 슬며시 웃는 그 표정 안에 진중한 마음이 들어있음을 보았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다시 태어나면 상대와 다시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빠는 1초도 쉬지 않고 네!라고 대답하고 엄마는 다시는 결혼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보통(?)의 부부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왜 아빠와 결혼을 한 건지 엄마에게는 여러 번 질문했었어요. 엄마의 장면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가 어느 날 출근시간이 훨씬 지나도 출근을 안 했다는군요. 걱정이 되어 자취방 주인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몸져누워 출근을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동료들과 퇴근 후 병문안을 가보니 일단 방이 너무도 깨끗하고 각 잡혀 있어 놀라고 짐도 별로 없어 휑한 그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거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나요. 그 장면을 전해 들은 그는 말합니다. 사실은 술병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었다고. 흠흠. 훈훈함이 조금 옅어지는 듯도 하지만......     



연애시대 마지막화 마지막 장면에서 미연의 딸 은솔이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사랑이 뭐야?" 

사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입장이 계속해서 나오는 드라마를 끝까지, 그것도 여러 번 보았지만 언제나 은솔의 질문에는 미연이 당황하는 것처럼 쉽게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물음에 좋은 답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오는 동안 어느덧 은솔 역을 맡은 배우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이 뭔지 어떻게 시작되고 또 평생을 함께 할 마음이 어찌하면 드는지 늘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장면을 들은 순간도 또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며 20대 중반의 두 사람이 서로를 지켜주고 싶고, 짠하게 여기게 되어 결혼하고 또 함께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고 가늠하며 어렴풋이 짐작해보았습니다.  


 

 늘 두 사람이 그 장면들을 간직하며 알콩 달콩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야기는 물론 이렇게 끝나지 않았고 계속되는 중입니다. 이야기의 2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2부는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는 재난영화 또는 동료를 구하러 가는 전쟁영화나 심리전이 주요 내용인 스릴러 영화에 가깝고 아름다웠던 주인공들의 외모도 조금씩 빛이 바랬지만 돌아보니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따뜻하네요. 이야기를 읽는 것과 주인공이 되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겠지만 감히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보건대 사랑은 어쩌면 서로를 짠하게 보는데서 시작되어 수많은 곡절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함께 하는 것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작가의 이전글 선택한 항목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