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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Mar 02. 2019

첫 봄날의 기억




이르게 따뜻해진 날씨에 그 해 봄 경주 갔던 기억이 나네요. 봄 같지 않게 꽤 많은 비가 내렸던 전 날과 달리 우리가 떠났던 날은 날씨가 참 좋았잖아요. 기억하세요? 


 그 해도 이르게 따뜻해져 일찍 핀 벚꽃에 많은 비가 내려 꽃구경은 올해도 못 갔다 하는 내게 당신은 대뜸 경주 가 보았냐고 물었죠. 어릴 때 가보긴 했을 텐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당신은 그럼 지금 가보자며 기차역으로 갔었죠. 30분 남짓 뒤에 출발하는 표를 산 뒤 우리는 플랫폼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어요.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더니 당신은 꽃구경은 날 기다렸다 가면 놓치는 법이라고 겹벚꽃은 조금 늦게 피니 지금 경주에 가면 꼭 볼 수 있을 거라 말했지요. 우리는 경주역에 내려서 스쿠터를 빌렸어요. 코끝에 마른빨래 냄새처럼 건조한 공기 내음이 스쳤습니다. 꽃잎과 햇살을 맞으며 달려서 불국사로 향했지요. 그렇게 많은 겹벚꽃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어요. 만개한 겹벚꽂은 파란 하늘 아래 몽글몽글 모여 있었어요. 꽃가루를 온몸으로 맞으며 분홍 구름 아래를 돌아다니다 소풍 온 듯 줄지어 선생님을 따라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애기들도 너처럼 나중에 기억 못 할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이 말했었죠. 배가 고파져 정작 경내는 들어가지도 않고 밥집으로 가는 길 스쿠터를 운전하는 당신 뒤에 앉아 새삼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색해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편식이 심하고 입이 짧아 밥을 몇 술 뜨고 마는 나를 신기하게 보며 당신이 말했지요. "그것 먹고도 배가 부르니? 군것질 좋아하는구나. 나도 좋아해. 맛있어 보이는 것은 다 먹어 보자." 예쁜 동네를 걸어 다니며 신나 했었죠. 예뻐 보이려 몇 번 신어 보지도 않은 구두를 신고 걷다 구두가 벗겨져 버렸을 때 구두를 내 발 앞에 두며 "구두 참 예쁘네. 조금 천천히 걷자." 했죠. 나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이며 겨우 대답했었죠. 입구에 이상한 나무 조각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조각 파는 가게에 들러 조그만 나무 조각에 글씨를 써주는 목걸이 두 개를 샀지요.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말했고 글을 써 주던 가게 주인이 이름이 예쁘다 하자 당신은 잡고 있던 내 손을 더 꼭 잡으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환히 웃었죠. 그 가게 앞에서 목걸이를 걸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을 때 바라본 건너편 공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잎들을 두어 개 씩 흩날리고 있었어요. 



해질 무렵 그래도 경주에 왔는데 첨성대는 봐야 하지 않겠냐고 우리는 첨성대로 향했어요. 해가 조금씩 넘어가며 세상의 모든 색이 모여든 하늘 아래 첨성대를 예쁜 조명이 밝혀 주고 있었어요. 어두울 때 보는 첨성대는 처음이라고 했을 때 당신은 언젠가 어두울 때 와서 보니 환한 조명을 받은 첨성대가 꼭 달의 조각이 땅에 내려온 것 같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었죠. 우리는 해가 지는 풍경과 뜨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다 호미곶에 가서 해 뜨는 것을 보자 했어요. 혹시라도 시외버스가 끊길까 조마조마하며 달려간 버스 터미널에서 새벽 3시 넘어서까지도 포항 가는 버스가 있는 걸 보고 우리는 엄청난 걸 발견한 초등학생처럼 히히 웃었어요. 



해뜨기 전 도착한 호미곶은 캄캄한 어둠뿐이었어요. 끝없는 파도 소리만 귓속에 가득 찼어요. 내가 고래뱃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하자 당신은 고래뱃속이 너무 춥다고 했었죠. 햇살 가득했던 날 좋은 봄날도 밤바다는 너무도 춥다는 걸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우리는 파도소리를 따라 바다 방향을 향해 더듬더듬 걸어갔어요. 바다 앞 비수기의 매점은 혹시나 했지만 굳게 잠겨 있었고 괜스레 매점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바다 방향으로 걸어가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끝머리에 겨울잠 자는 다람쥐처럼 웅크리고 앉아 까만 허공을 바라봤어요. 어디부터 바다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는 허공인 줄 알았지만 가만히 바라보니 조금씩 빛나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별, 파도, 모래들. 빛들이 눈에 익을 때쯤 넷 에움이 조금씩 밝아지며 빛들은 사라지고 바닷속의 손 위에 앉은 새들이 보였어요. 호미곶으로 데려다주던 택시기사님이 했던 말을 그 손가락 끝에 한 마리씩 올라앉아 있는 게 희한합니더. 그 위로 해가 정확히 떠오르는 것도 신기하고예. 어찌 그 위치를 딱 알고 그걸 만들었는지. 억양까지 흉내 내며 당신은 새들이 정말 앉아 있네 나도 저 손바닥 위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었죠. 

 

처음 온몸으로 뒤집어 썼던 봄. 그 하루의 기억은 봄날들을 휘저으며 떠다닙니다. 

첨성대에 불국사 앞마당에 호미곶 새들 사이에 숨어 있다 익숙한 온도가 되면 찾아 오는 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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