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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Oct 01. 2019

누군가의 혼잣말 下

가끔 꿈에 나오는 O




가끔 꿈에 나오는 O. O를 처음 본 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식당에서였다. O는 그곳에서 일한 지 2~3개월 정도 된, 말하자면 선배였다. 점장이 나를 인사시킬 때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후에 O에게 내 첫인상을 물었더니 O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나는 더 묻지 못했지만 지금도 궁금하다. O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땠을까? 기억이나 할까?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나이가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 하루가 멀다고 술을 마셨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O와 점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도 둘이서만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한참 이야기할 때도 많았다. 술을 아무리 많이 먹고 늦게 들어가 잠을 제대로 못 자도 아르바이트를 가는 게 싫은 적이 없었다.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O가 쉬는 날은 예외였다. 아무리 그날 컨디션이 좋아도 시간이 너무도 안 가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가끔 O가 쉬기 전 날 애인이 데리러 와서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 자리를 흘끔거리며 나도 모르게 O의 애인의 흠을 찾으려 애썼다.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하는 것 같았고 편식을 하는 것 같았고 인상도 별로 인 것 같았다. O는 애인과 즐겁게 웃으며 밥을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하고 갔다. O에게 애인에 관해 물어본 적은 없었고 O도 애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이야기 말고도 우리가 할 이야기는 차고 넘쳤으니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도 단지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임은 계속됐다.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나오는 횟수가 줄어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와 O는 매번 나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한 사람도 있었다. 피로연장에서 누군가 O에게 물었다. 애인과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냐고 결혼 언제 할 거냐고. O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애인과 며칠 전 헤어졌다고 했다. 모두 당황했다가 O를 따라 웃으며 잘했다고 술이나 먹자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O옆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언제 어디서나 O의 옆에 서 있어도 왜 네가 O 옆에 있냐고 묻지 않을 그런. 



며칠 뒤 퇴근하면서 처음으로 O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다. 그제야 O가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도 내가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을 깨닫는 기간이나 계기는 내가 특정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다는 걸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왠지 O에게 야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O가 시간이 괜찮은지 나를 만나 줄지 답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차부터 빌렸다. O는 반가워하며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O가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그것만으로도 O의 애인이 된 듯했다. 분명 무표정이라 생각했는데 백미러를 보니 내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O가 차에 타자마자 나는 당황했다.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O는 그런 나에게 왜 찾아온 건지 어디를 갈 건지 묻지도 않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맛있는 걸 먹자고 했더니 날이 쌀쌀해 아까부터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내 복잡한 머릿속과 상관없이 O의 태도는 여럿이서 모일 때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차를 가져왔으니 술은 본인만 먹겠다며 뼈에 붙은 살을 열심히 발라 혼자 술을 잘도 따라 마셨다. 나는 그 사이에 야경이 좋은 곳을 검색했다. O는 사람을 불러 놓고 휴대폰만 보고 있냐고 했다. O는 그때 처음으로 헤어진 애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내가 헤어짐을 위로하러 온 것으로 O는 알아서 생각한 듯했다. 술이 들어가서 말이 좀 많아지긴 했지만 O는 크게 감정이 격해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늦은 밤 적당히 취한 O를 조수석에 태우고 나는 삼청동 안쪽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언덕으로 올라갈수록 서울의 수많은 불빛이 점점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야경을 보러 조금 더 걸었다. O는 먼저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소리쳤고 그 장면이 가끔 꿈에 나온다. 꿈에서는 야경이 더 환하고 날씨는 하나도 춥지 않고 O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도 환한 풍경인데 O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잠에서 깨어 항상 답답하다. 그날 O에게 내가 우리 관계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했다면 O의 얼굴은 내 꿈에 정확히 나올 수 있었을까? 



그날 나는 앞으로 O와 야경을 볼 시간이 많이 있다고 내 멋대로 예측했다. 삶이 안정적이고 평평한 땅 위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사실 다리 하나만 없어져도 바닥까지 기울어져 버리는 다리 세 개짜리 테이블 위에 서 있던 거였는데. 며칠 뒤 O에게 연락이 왔다. 답장을 하려던 찰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집안 사정이 기울고 내 사정도 기울었다. 회사에서는 타이밍 좋게 해외근무 신청자를 받았고  한국에서 제일 멀고 돈을 제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신청했다. O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는 사이였으니까. 알고 있었다. O는 먼저 묻지 않을 거라는 걸. 내가 말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고민만 하다 시간은 흘렀고 결국 나는 아무 말 없이 한국을 떠난 셈이 됐다. 비행기에 앉아 있는 내가 꼭 도망자 같이 느껴져 초라했다. 그래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게 괜찮아져 있을 거라고. O보다 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또 어쩌면 웃으면서 옛사랑처럼 추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간은 해결해 줘야 할 것이 많았다.    


한동안 한국에 관련된 건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아주 가끔 한국 생각이 가끔 났다. 아니, O에 대한 생각. 이럴 때 O는 뭐라고 말할까 궁금했다. 사람 마음이 정말 웃긴 게 시간이 좀 흘러 마음이 편해지니 떠나올 때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이 점점 더 그리워졌다. 그래서 예전에 쓰던 메신저에 들락날락했다. 접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그때 상황과 유행어 같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런 것들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랬다. 어느 날 그 메신저에 O가 접속해 있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O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서둘러 쪽지를 보냈다. 보내고 나니 아무 연락도 없이 떠나버린 내 행동이 생각나 더 초조해졌다. O는 고맙게도 너무 반가워했다. 여전히 O는 내가 난감해할 것 같은 질문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 O도 그 당시 한국이 아니었다. 우리는 향수병에 대해 얘기했다. 밉지만 그립다고.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O가 있는 곳의 시각을 검색해가며 거의 매일 메신저로 대화했다. 시차도 느린 인터넷 환경도 긴 시간 이야기할 수 없는 것도 모두 답답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 더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O가 다음 여행지를 내가 있는 곳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까. 몇 번을 되물었다. 정말이냐고 농담 아니냐고.      



O는 얼마 뒤 정말로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삭막한 허허벌판 같은 동네에 O가 내 앞에 앉아 닭튀김을 먹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나는 O를 한참 바라봤다. 씩씩하고 용감한 O. 도망자 같은 나에게 찾아온 O. 신기루 같은 O는 곧바로 원래부터 내 숙소에 살고 있던 사람처럼 익숙하게 짐을 풀고 여행을 다녔다. O가 여행을 떠난 평일에는 두고 간 큰 가방이 신기루 같은 O가 사라지고 남은 흔적인 양 쳐다봤다. O와 함께 하는 주말에는 신기루 같은 현실이 너무 행복해서 마음이 자꾸 오그라들었다. 정작 갑자기 연락을 끊었던 것은 나였는데 꼭 O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행복한 마음을 불안으로 자꾸 억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어떤 예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결국 못난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예감. O가 떠나고 O의 큰 가방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보는 날이 잦아졌다. 아무리 봐도 O의 가방은 그 자리에 다시 생기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O와 보낸 시간들을 떠올렸다. 우리가 먹었던 음식들, 걸었던 공원들을 혼자 가면서 우리가 했던 대화들을 생각했다.      

언젠가 O와 함께 있던 주말 저녁 우리는 중국 요릿집에 가서 피가 두툼한 물만두를 먹었다. 우리는 그 가게를 꽤 여러 번 갔는데 O는 여행 가 있는 동안 물만두가 계속 생각나서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 가면 물만두가 그리울 것 같아 벌써 걱정이라고 했다. O가 먼저 돌아가서 똑같은 맛이 나는 곳을 찾아 놓겠다고 했다. O는 그런 만두집을 찾았을까? 그리고 공원을 걸으면서 O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O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나는 끝도 없이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온 게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돌아가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져 있을 테니 부모님을 덜 원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히려 그 예상이 한국에 와서 변함없는 집 사정에 부모님을 더 원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나는 또다시 도망쳤다. 극단적인 선택이 꼭 극단적인 계기로 시작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알고 있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O도 그대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O가 나에게 문자로라도 화를 내줬으면 했다. 하지만 O는 결국 그러지 않겠지. 내 초라함이 모두 끝나고 언젠가 물만두 집을 찾았냐는 연락을 하게 될 날이 올까? 여전히 나는 O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씩씩하고 용감한 O. 도망자 같은 나에게 찾아온 O. 신기루 같은 O에게 나는 너무 모자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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