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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병아리 Apr 16. 2023

오리가 되고 싶어

  신나게 치킨을 먹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바삭한 식감에 심취해 있던 도중 갑자기 입안에서 ‘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너무 맛있어서 뼈까지 깨물었나?’ 맙소사! 치킨 뼈가 아니었다. 앞니 안쪽 면에 부착해 놓은 철사로된 치아 교정 장치의 끝부분이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게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치과에 가야지 가야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열 번은 다녀왔지만 정작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특유의 약냄새와 공포의 그 기계소리를 마주하려면 아주 아주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깊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혀끝으로 부러진 자리를 자꾸 건드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뾰족한 부분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3~4년이란 시간과 돈을 들여 치료는 마무리 되었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이 안쪽에 부착된 교정 장치와는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슬픈 사실을 통보받고 절망했다. 

  처음 치아 교정할 때가 생각난다. 부착해 놓은 장치기로 인해 치아의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 전체가 묵직한 두통으로 괴로웠다.

  위아래 균형이 맞지 않는 앞니 때문에 면을 이로 끊어먹을 수가 없어 가위로 자장면을 잘게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단무지를 깨무는 순간 너무 아픈 나머지 깜짝 놀라 뱉어냈던 게 기억난다. 단무지가 그렇게 딱딱한 음식이라 는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고통이 익숙해질 때까지 죽을 먹으며 강제 다이어트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아픔을 뛰어넘을 만큼의 엄청난 식욕을 가지고 있다. 사과도 바나나도 잘게 자르고 고기와 김치도 잘게 잘라 어떻게든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하나로 방법을 찾아 꿋꿋이 먹었다. 


  ‘예뻐짐’을 담보로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멀쩡한 생어금니 네 개를 뽑고 전체적으로 이가 많이 약해졌다. 튼튼한 이 하나는 자부심이 있어 마른 오징어도 오독오독 잘 씹어 먹었는데 이제는 마른 오징어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발음이 조금 새고 부착해둔 교정 장치기 외에 별도로 유지 장치기도 자주 껴 줘야 한다는 크나큰 단점도 뒤따른다.

  이렇게 끝없는 여정을 동반한 기나긴 행군의 나날들이었음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냥 생긴 대로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입술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셨던 선생님들의 손길도, 그렇게도 듣기 싫었던 ‘오리’라는 친구들이 불러주던 애칭도, 오리 입으로 겁 없이 딱딱한 음식을 쪼아 먹던 그때 그 시간들이 모두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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