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먹으며
언젠가 무의식 중에 나온 말실수로 인해 친구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저 언니 털복숭아를 깎지도 않고 그냥 먹어,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니, 그냥 먹을 수도 있고 깎아 먹을 수도 있지 그걸 왜 이상하다고 표현을 해,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거지.”
그렇다 내가 틀렸다. ‘정상적이다와 비정상적이다’, ‘옳다와 그르다’가 아닌 ‘다르다’라고 했어야 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입버릇처럼 주장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이렇게 세상을 나만의 잣대에 가두어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원래 그런 것 따위의 변명으로 일반적인 것과 그것을 벗어난 것 사이에 금을 긋는 나와 마주칠 때면 나 조차도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내가 복숭아를 깎아 먹는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천도복숭아를 좋아한다고 하여 털복숭아를 먹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자격 또한 없다. 털복숭아를 선호하는 사람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내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숭아를 깎아 먹든 그냥 먹든, 포도씨를 삼키든 뱉든, 고기를 쌈에 싸서 먹든 소금에 찍어 먹든, 그것은 이상하다와 정상적이다, 바르다와 잘못되었다가 아닌 그저 개인의 ‘취향’인 것이다.
그렇다, 나와 조금 다르다고 하여 이상할 일은 아니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함부로 판단하고 섣불리 결정지어 버린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유가 있고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있다. 우리는 이 모두를 이해해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외형적으로 나와 조금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거나 자신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상대방을 단번에 이상한 사람,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장애인을 바라볼 때의 시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특이한 사람 혹은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천도복숭아와 털복숭아처럼 조금의 다름이 존재할 뿐, 동등한 인격체이다. 단지 조금은 다르고 조금 불편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편견과 평등은 한 끗 차이 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편견으로부터 조금만 시선을 돌려 바라보자, 그러면 어느새 모두가 행복한 세상, 편견 없는 사회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