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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병아리 Jun 02. 2023

빛나는 여름

  2012년 어느 여름날,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녀들과 함께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손잡고 떠나는 여행길이었다.

  “시각장애인 6명이! 그것도 여자들만?”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제주행 여정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체크인부터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안내 시스템이 너무도 잘 마련되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우선탑승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고려해 주시어 승, 하차 시 안내를 받으며 첫 번째로 오르내리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비행기를 몇 번 타본 적 없는 시골처녀들은 이륙과 착륙 시마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구름 위를 짜릿하게 날아올랐다.



  누구보다 알차게 즐기고 오리라 마음먹고 한 달 전부터 각자 맡은 일을 부지런히 진행해 나갔다.

  저시력 친구들은 항공권과 숙소 예약 담당을, 시력이 전혀 없는 나와 다른 친구 둘은 도내에서 이동 시 이용할 차량을 알아보기 위해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에 연락을 하고 맛집 찾기를 함께 맡아하였다.


  숙소를 중심으로 가까운 흑돼지집 중 구워주는 고기 집은 어느 곳이 있는지, 계단이 많고 가팔라 접근성이 떨어지지는 않는지, 화장실의 위치는 가깝고 깨끗한지 등등 우리 상황에 맞는 식당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식탐이 많은 나는 먹든 안 먹든 우선 하루 세끼 먹을 음식점을 다 찾아놓았다. 휴일과 영업시간을 체크하고 변수가 있을 시 대체할 식당까지 검색한 뒤 손님이 많은 곳은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첫째 날 저녁은 수많은 고깃집 중 고심 끝에 선택한 흑돼지 집으로 출발하였다. 육즙 가득한 흑돼지의 식감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 안 가득 절로 침이 고인다.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구워주시며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시던 사장님께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소하고 부드러워 술술 넘어가던 전복죽은 아침식사 메뉴로 단연코 최고였고 얼굴만 한 허브버거도 인상 깊었다.

  생선을 입에도 대지 않는 내게 한 입만 먹어보라며 손수 먹여주던 친구 덕분에 제주은갈치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보트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되돌아가 달라’며 대성통곡을 하던 협재해수욕장의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과, 시원한 파도의 손길이 아직도 몸을 감싸오는 듯하다.

  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함께 창피를 당해야 했던 그녀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후로 ‘협재해수욕장 시각장애인 보트 탑승 불가’라는 기사가 뜨면 어쩌나 내심 우려심이 들었으나 아직 그런 기사는 나오지 않은 듯하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다음 날은 허브 랜드를 방문하여 여러 종류의 허브차를 음미한 뒤, 예쁜 향 가득한 허브비누와 방향제도 각자 한 아름 안아 들고 돌아왔다.

  온몸을 뻣뻣이 세운 채 안절부절 말 타기 체험을 하던 그때 그 겁쟁이는 10년 전 모습 그대로 거실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술잔을 기울이며 10년 뒤의 우리는 각자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의 그 시간들이 눈물 나게 그립다.

  수없이 많은 날을 함께 눈물 흘리고 웃음 지으며 서로에게 용기를 주었던 지난날들처럼 앞으로 남은 날들도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받쳐주고 보듬어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각자의 직위에서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 나가고 있는 지금, 또 다음 10년이 흐른 뒤 우리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온갖 흐리고 궂은날에도 잘 견뎌주어 기특하다고, 부족한 나와 스무 해가 넘는 긴 시간을 함께 손잡고 걸어와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막막한 시간 속에서도, 너희가 있어 쓰러지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고, 정말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고 그녀들에게 마음을 다해 고백하고 싶다.

  10년 전 반짝이던 제주도의 어느 여름날처럼 앞으로 펼쳐질 우리들의 인생도 늘 따사롭게 빛나는 여름날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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