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병아리 May 08. 2023

최고의 선물

  나는 만인이 인정하는 기계치이다. 전자기기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고 모래알만 한 지식조차 없다.

  집에서 사용하고 있던 키보드가 소음이 크고 안정감이 없어 이참에 새로운 것으로 하나 구매하리라 큰맘 먹고 며칠을 키보드 공부에 돌입했다.

  전자기기 자체에 문외한이니 키보드에 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을 하고 또 해봐도 만져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딸깍딸깍 소리가 나지 않으며 눌림 감도 좋고 금액 또한 적당한 키보드를 찾기 위해 결국 친구와 대형마트로 향했다.


  ‘청죽과 갈축, 적축과 흑축은 또 뭐람’ 키보드에도 이렇게 종류가 많았다니, 보면 볼수록 더욱 깊고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비치된 제품들 가운데 무접점 키보드라는 생소한 이름의 키보드를 발견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세계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거구나.

  키보드 위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가벼운 터치감과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의 큰 장점이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키보드는 다 똑같다’는 무지하고 꽉 막힌 고정관념이 ‘와장창’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금액은 10만 원 미만이었다. 하지만 생각한 금액을 훨씬 초과하는 액수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참을 만지작대다 고민 끝에 다른 매장에서도 조금 더 알아보고 사겠노라며 내려놓았다. 




  이후 또 다른 키보드를 찾아보기 위해 그 친구와 다시 어느 큰 전자상가로 향했다. 그곳은 키보드 천국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키보드를 한곳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저것 많은 종류의 제품들을 눌러보며 온 매장 안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많고 많은 키보드 중 내 마음을 빼앗은 제품은 단 하나, 신기하게도 지난번 보았던 바로 그 제품이었다.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정해 놓은 금액을 넘기기는 싫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갑자기 친구가 마우스를 좀 더 보고 나오겠노라며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던 키보드를 내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받아, 그 정도로 가지고 싶으면 가져야지 넌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돈 보낼 생각이라면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걸로 글 열심히 써서 작년보다 상도 더 많이 받고 네가 좋아하는 글쓰기 꾸준히 했으면 해.”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얼른 입술을 꽉 깨물었다. 쿵쾅대는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뛰쳐나갈 것만 같아 가슴을 꾹 눌렀다. 너무 행복해서 박스를 만지고 또 만졌다.

  “그럼 내가 올해 안에 상 받아서 꼭 그걸로 갚을게. 그건 괜찮지?”

  “그래 정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나는 너의 그 열정이 참 멋져! 늘 지지하고 응원해.” 



  어떻게 나 같은 사람 곁에 이렇게 좋은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미치도록 고마웠다. 땅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며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키보드를 연결한 후, 가만가만 눌러보았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보글거림과 손끝에서 전해오는 가볍고 퐁신퐁신한 감촉이 신기했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히 쓰고 싶은 글을 원 없이 써 보는 것, 그리하여 행운이 따라 준다면 수상의 기쁨과 넉넉한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 내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퐁신퐁신한 키보드를 조심스레 누르고 또 눌러본다. 

이전 11화 빨간 장미허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