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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병아리 Apr 28. 2023

귀욤이와 튼튼이

  “귀욤아, 이 옷은 무슨 색이야?”

  “음. 핑크, 핑크색이야.”

  “오늘은 무슨 그림 그려진 옷 입었어?”

내 집게손가락을 당겨 오동통하고 동그스름한 배로 가져가 “a b c d.” 한 글자 한 글자씩 꾹꾹 눌러가며 짚어 준다.

  그러고는 “이모 우리 자동차놀이 하자.” 하며 손을 꼭 잡고 방으로 데려가 자동차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준다.

  외출할 때에는 신발을 발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며  “이모 신발.” 하며 손을 신발 위에 탁 하고 올려준다.

  어머 얘가 벌써 이모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인지하나 보다! 싶다가도

  “이모 이거 봐라 내가 그렸다! 예쁘지?” 하며 도도도도 달려와 내 코앞에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자랑을 하는 걸 보면 아직은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다.

  화장대 앞에 앉아 신중하게 머리를 빗은 후엔 “이모 나 멋지지?” 거울을 빤히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하는 행동이 지네 형 튼튼이 어릴 때의 행동과 놀랍게도 똑 닮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식구들은 아침식사 중이었고 평소 아침을 먹지 않는 나는 방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빨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귀욤이가 옆에 와서 “이모 아! 아!” 하며 내 팔을 톡톡 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 뭐 해 줄까?” 되물었더니 “우리 형아가 만든 거야 엄청 맛있어.” 하며 내 입 속으로 밥숟가락을 쏙 집어넣는다.

  귀욤이는 형아 튼튼이가 만든 계란밥을 최고로 좋아한다. 그렇게 맛있는 계란밥도 먹지 않는 이모가 내심 신경 쓰여 손수 먹여주러 온 거였다.


  또 한 번은 귀욤이가 돌도 되기 전의 일이다. 언니네 집에 놀러 가 귀욤이를 안고 재운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두리번두리번 방 안을 둘러보더니 “엄마? 엄마?” 내 얼굴을 살며시 만져 보고는 두리번두리번 또다시 “엄마? 엄마?” 하며 내 얼굴을 만져 보았다.

  엄마인 듯 엄마 아닌 엄마 같은 닮은 얼굴에 혼란스러워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말랑한 몸을 꼭 안아 주었다.


  안고 있으면 볼을 살며시 맞대며 내 등을 토닥토닥하던 때가, 국수를 한줄기 손에 쥐고 귀에 걸었다 한 입 먹었다 온 집안을 기어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녀석들이 이렇게 자랐구나.

  이모 욕심으로는 오래도록 아가로 남아 있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런 생각을 언니가 알면 아마 손바닥이 등짝으로 날아들겠지.


  “감자 칩을 한입 먹다 줘도, 귤을 쪽쪽 빨아먹다 줘도, 너희 엄마는 먹지 않았는데 이모는 다 먹었다. 아기들은 맛있는걸. 나눠주는 게 제일 큰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더라, 고마워 얘들아.”


 큰 조카 튼튼이는 엄마와 카페에서 데이트할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 한다. 엄마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튼튼이는 음료를 한잔 놓고 과제를 하는 게 다이지만 아마 잔소리하는 아빠와 형아 바라기 귀욤이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나도 튼튼이와 1년에 한두 번씩 데이트를 한다. 카페에서 각자의 공부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고 마트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한다.


  우리 튼튼이는 향수 시향하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는 날이면 향수 모으기가 취미인 내 향수들을 만져보고 향도 맡아보며 좋아했었다. 그래서 가끔 튼튼이와 뷰티숍에서 새로 나온 향수 시향하기 놀이를 하곤 한다.

  이제 키와 몸무게가 이모를 넘어섰다. 만나기만 하면 “이모 키 재보자~” 하며 본인이 더 크다는 것에 뿌듯해한다. 하지만 몸무게 얘기에는 민감하다.

남들 앞에서 “튼튼아~ 너 이제 몇 키로지?” 하고 물으면 “이모~ 작게 좀 얘기해.” 쏜살같이 달려와 내 입을 막는다. 나는 또 그 모습이 예뻐서 일부러 큰 소리로 몸무게를 더 높게 말한다.


  “이모, 계단 두 개 올라가야 돼.”, “이모~ 물 있으니까 발 넓게 뛰어야 돼~”,  “이모~ 큰 계단 하나 내려간다. 조심해.” 이렇게 의젓하게 안내보행도 잘할 만큼 어느새 성큼 성장했다.

  엄마와 쇼핑을 하다가도 예쁜 옷이 있으면 “이모~ 이 흰둥이잠옷 이모가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우리 엄마랑 같이 골랐어.” 귀욤귀욤 예쁜 것으로 잘 골라 온다.

  사랑하는 귀욤아 튼튼아, 이모는 너희가 있어 너무 든든하고 행복하단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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