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하이힐을 신을까?
주말 저녁,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 준비에 분주하다. 블링블링 큐빅네일이 빠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헤어에센스를 정성껏 바른 후 구불구불한 웨이브 머리를 어깨에 늘어트린다.
손끝으로 요리조리 만져가며 화장도 하고, 심혈을 기울여 핑크색 립스틱도 발라 준다.
목과 귀가 밋밋해 보이지 않도록 하트 모양의 목걸이와 이어링을 착용하고, 원피스에 코트를 받쳐 입은 후, 마무리로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감도는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린다.
마지막으로 금장이 박힌 핸드백을 꺼내 멘 뒤, 7센티 높이의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집을 나선다.
언젠가 유명 연예인이 시각장애인으로 출연한 드라마에서 하이힐을 신고 나온 장면을 보고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한다.
‘앞이 안 보이는데 구두를 어떻게 신고 다녀.’
‘보이지도 않는데 화장은 왜 해.’
이렇듯 무례하고 편견에 가득 찬 댓글들이 줄줄이 달린 덕분에 급기야 작가가 해명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단다.
여자라면 누구나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잘빠진 몸매와 외모를 선호하지 않을 여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 당사자가 장애인이라 하여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달라야 할 이유 또한 없다. 여성 장애인 역시 한 여자이며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의 크기는 여느 여성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우려처럼 높은 구두를 신고 길을 걷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어서, 혹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장애인은 구두를 신을 수 없어, 신지 말아야 해’와 같은 단편적인 논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멀쩡히 눈을 뜨고도 높은 힐을 신고 자주 넘어지는 친구들이 있다, 하이힐보다는 주로 단화나 운동화를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화장이 습관화된 사람도 있고, 색조화장품 하나 소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매장에서 검은색 계열의 옷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두운 색 계열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는 사람도 있다.
또한 치마를 즐겨 입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장의 대부분이 바지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있다.
‘시각장애인의 일상’이라 하면 으레 굉장히 독특하고 다를 것이라 생각들 하지만, 별달리 이렇다 할만한 특별함이 있지는 않다. 시각장애인도 주기적으로 속눈썹을 붙이거나 네일을 하고, 화장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화장품과는 전혀 친하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특별한 모임이나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에만 화장을 하거나 구두를 신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할 수 있다와 없다’에 중점을 두기보다 ‘취향과 선택’의 관점으로 접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과일가게에서 빨간 사과를 고르든 파란 사과를 고르든, 참외 씨를 빼고 먹든 그냥 먹든, 그것은 본인이 결정하는 선택과 취향이니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지만 생각보다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장애인은 분명 이럴 것이다, 장애인은 반드시 이래야 해’와 같이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정해 놓은 답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일에 정해진 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선생님~ 안 보이는데 밥은 어떻게 먹어요?”
“선생님~ 안 보이는데 길은 어떻게 걸어 다녀요?”
이렇게 물어오는 초등학생들의 질문과 다를 바 없는 논쟁들은 제발이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살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장애인이어서도, 앞을 보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편견에 편견을 더해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편견이 장애를 벗어날 수 없는 더 크고 무거운 굴레 속으로 몰아간다. 장애인은 이상한 존재도 특이한 존재도 아니다. 단지 조금 불편하고 조금 다를 뿐, 다 같은 동등한 인격체이다. 그러니 조금만 시선을 바꾸어 바라보자.
모르면 오해가 쌓이고, 알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오해를 반으로 줄이고 이해를 두 배로 더한다면 조금 더 따듯한 시선과 넓은 관점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모두의 시선이 변화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어우러져 평등한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