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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Sep 14. 2022

냉장고에 채워두세요.

엄마의 사랑으로




 퇴근을 하고 늦은 시간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거의 9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이어서 배를 조금만 채울 생각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엄마가 해 준 반찬들과 추석 때 부쳐 준 전이 들어 있었다. 한입 크기로 잘라진 부추 전을 접시에 조금 덜어 그 자리에서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전을 우걱우걱 먹다가 이게 없었다면 아마 먹다 남은 매운 새우깡을 먹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조금 쓸쓸해졌다.


 내 가게를 하며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생활 방식의 변화이다. 이 전에는 워라밸을 외치며 나의 생활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썼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피곤해도 일주일에 몇 번은 취미생활을 하고 주말을 계획하였다. 생활의 중심은 나였고, 내가 조금 더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계속 찾아갔다. 그러다 자영업을 시작하였고, 이때껏 유지해오던 나의 생활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생활의 중심이 내가 아닌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게 운영 전, 난 가게를 해도 적당한 워라밸은 지킬 거야, 취미 생활과 친구들과의 모임도 놓칠 수 없지! 하며 외치던 나는 영업 3개월 만에 매출과 각종 세금들, 여러 지출에 쫓기며 하루의 10시간 이상을 가게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주위의 자영업자들은 밤낮으로 일을 했고 나 역시 그들과 하나가 되었고 처음과 다르게 가게를 중심으로 나의 생활이 돌아갔다.


 해야 할 일들은 끊임없이 불어났다. 아니, 불어난 것이 아닌 그저 내가 가게를 하기 전에 몰랐던 일들이 참 많았고 혼자 영업을 하는 특성상 모든 것을 내가 준비하고 결정하고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는 사이 나의 생활은 소홀해져 갔다. 집에서도 설거지, 가게에서도 설거지를 하는 일상은 집의 설거지를 줄이게 하였고, 집에서 요리를 할 힘도, 시간도 없게 되어 점점 아주 간단한 원 팬 요리만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는 것, 그게 가장 힘들었다. 라면을 잘 안 먹던 내가 쉬는 날엔 라면을 찾고(그래도 영양을 챙기겠다고 계란과 파를 넣었다.) 일하는 도중에 먹을 과자를 사기 시작했다. 항상 공간이 모자라던 집 냉장고는 어느덧 각종 소스들만 남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밖에선 가게 일을 집에선 고양이들 챙기고 자투리 시간엔 집안일을 하다 보니 잠 자기 전까지 몸을 움직이다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생활을 하였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고, 여기저기 신경 쓸 곳이 많아지니 가장 먼저 소홀해지는 곳은 당연스럽게도 나였다. 그게 이상하게도 괜히 서러워서, 나도 챙김 받고 싶고 보살핌 받고 싶어서, 그럴 때마다 자연스레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자취하는 딸에게 줄 반찬을 하루에 몇 가지씩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몸에 좋은 것이나 이 계절에 먹어야 할 것들을 죄다 미리 준비를 해 두셨다. 나 역시 요리하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쉬는 날엔 혼자 파스타를 만들어 먹거나 외식을 하는 등 알아서 잘 챙겨 먹었기에 엄마의 반찬을 항상 외면했었다. 내가 좋아하던, 잘 먹던 것들을 어쩜 그리 잘 기억하시는지 꼭 그 재료가 마트에 나오면 꼭 반찬을 만들어 두시고 내가 본가를 방문할 때마다 반찬은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낫다며, 피곤할 때 냉장고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서럽다 하시며 가져가도 잘 안 먹는 다며 거절하는 나에게 억지로 반찬을 담아주셨다. 그런데 엄마 말씀이 다 맞았다. 철없던 20대엔 몰랐다. 배고픈 밤, 텅 빈 냉장고는 정말 서럽고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이때껏 다 먹지 못해 버린 반찬들과 싫어하는 반찬이라며 엄마께 성질내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땐 주 6일 집 근처의 작은 식품 공장에 다니셨고 하루 10시간 가까이 일을 하시며 집안일과 우리 자매를 돌보기도 하셨다. 지금은 다른 곳이지만 아직까지 주 6일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당시 난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 몰랐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하기에 당연하게도 좁은 나의 시선으로 불평과 불만만 가득했다. 당시의 엄마와 같은 30대가 되어 이제야 아주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뭔가를 책임지며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그럼에도 엄마가 이때껏 얼마나 애써서 버티며 살아오셨는지, 두 아이를 키우며 하루 종일 일을 하며 대체 어디서 버팀의 힘을 받으셨는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없이 고마우면서 여전히 죄송하다.


 늘 엄마가 싸 준 반찬을 맛있게 먹는다. 당연하게도 남길 일은 없고 오히려 이젠 없어서 못 먹는다. 다 먹은 빈 통을 가져다주면 엄마는 참 좋아하신다. 이건 싱겁고 저건 좀 짜고, 간장보단 소금 간이 좋으니 그렇게 해달라 하는 까탈스러움은 다 소멸시켜버렸다. 그저 다 맛있었다, 또 해달라 한 마디에 엄마는 참으로 기뻐하신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음식은 온기가 있다.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음식은 식어도 온기가 있어 엄마의 반찬을 먹은 나도 그 온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을 먹는 사람들도 그 온기를 가지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외롭고 쓸쓸하고, 서러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사람을 채우는 것은 음식이고 사람들이 그런 음식을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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