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6 03화

6-3. 인정

by moonrightsea

" 여기 식혜 주세요."

" 거스름돈 여기요."


" 구운 계란 주세요."

" 여기요."


밀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도 없이 그렇게 바쁘게 한참을 주문을 받았다.


저녁이 되자 또 한 차례. 그리고 12시쯤이 되자, 또 한 차례.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밀려드는 손님을 받았는지 모른다. 조금 지치는 걸까. 다리가 저려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 후우. 한숨을 쉬고 돌아서는데,


" 식혜 주세요."


이제는 거의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반사적으로 냉장고에서 식혜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며 자동으로 1만 원을 받아 카운터에 넣고 잔돈 8000원을 거슬러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 여기요. 거스름돈."

그러자 그 손님은 가지 않고 다시 거기서 5천 원을 주며,


" 구운 계란 주세요."

옆에 놓인 계란 바구니 계란을 주고 다시 카운터에서 3천 원을 거슬러 올려 두었다. 피곤해서 대답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다시 그 손님이 1만 원을 빼서는


" 커피요."

" 흐음."




다시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고 커피를 꺼내 테이블에 '탁'하고 올려놓은 후 다시 거스름돈 8000원을 꺼내 겨우 입을 떼었다.


" 거스름돈요. "

그러자 그 손님이 다시 5000원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입을 앙다문 채, 다시 눈을 지그시 내려 깔고 화를 꾹꾹 누르며 1000원을 거슬러 주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1만 원을 꺼내서 과자를 가져와서는


" 계산요."


나는 도저히 못 참아서 카운터에서 잔돈을 꺼내며 말했다.

" 손님 계산은 물건을 고르고 한 번에 좀 해 주시죠?"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데 연우였다.

" 이렇게 괴롭혀야 쳐다를 보는구나? 이야 눈 한번 마주치기 힘들다. "


그렇게 말하며 방금 내게 받은 아이스크림을 한 손으로 입에 문 채 내게는 식혜를 건넸다.


찜질방 2층 카운터 옆에 딸린 작은 통로 같은 베란다에 그렇게 서서 나는 연우에게 물었다.




" 어떻게 알았어요?"

" 희경 씨."


" 아 내가 왜 그 계집애 전화를 받아가지고. "

" 이렇게 니 몸을 혹사하면 뭔가 마음이 좀 풀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검은 봉지 안에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입에 물고는

" 돈 벌죠. 등록금. 뭐 범칙금도 벌고."


" 그래서 언제까지 벌 건데?"

나는 피식 웃었다.


" 아직 1시간 하고 20분이 남았어요."

" 그래서 계획이 잘 진행되어 가고?"


" 뭐 아직은요?"

" 그 자식은 너 여기 있는 줄 알아?"


" 당연히 모르죠? 지금이 피크 타임인데?"

" 무슨 피크 타임? "


" 애간장 녹을 시간. 간이 썩어 문드러질 시간."


그때 카운터에서 손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저기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주문 좀 할게요."


" 네 나가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카운터로 나가려 돌아섰을 때 순간 연우의 표정은 너무 슬퍼 보였다. 그런 그를 외면 한채 나는 다시 카운터로 들어갔다.




그렇게 연우는 꼬박 이틀 건너 하루마다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연우가 내게 드나든 지 10여 일. 강원도 찜질방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하고 2주가 지나고 있었고 이제 슬슬 돌아갈 채비가 필요했다.


언제 돌아갈까. 방학이 끝나기 전에 돌아갈까. 학기 중에 갈까. 그러기에는 내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가능하면 시간을 지체하고 싶은데 시간은 내 마음과 달리 너무 쏜살같이 지나갔다.


찜질방 벨소리가 나나 싶더니 어디선가 연우 목소리가 들렸다.


" 아 나 도저히 안 되겠다. 너무 피곤해. "


기어이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밤 온몸이 비에 젖어 물을 뚝뚝 흘리며 입구로 들어선 연우가 돈도 내지 않고 저벅저벅 신발을 신고 매점으로 들어와 내 손을 잡고 찜질방을 나서려고 할 때 찜질방은 온통 난리가 났다.


주인분 내외는 달려오셔서 연우를 붙잡고 이게 무슨 행패냐고 남의 영업점에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난리를 치고 나는 그런 주인 내외분께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고 연우는 무릎을 꿇고 집 나온 동생을 이대로는 못 두고 보겠다고 진짜 죄송한데 이제 좀 데려가겠다고 그렇게 생쇼를 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그간 일한 아르바이트비를 정산해 받고 그렇게 나는 연우의 차에 올라탔다.


그사이 그의 옷은 또 한바탕 쏟아진 비로 다 젖어 있었고 나는 채 찜질방 옷도 못 갈아입고 비에 쫄딱 젖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에 타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로 도로가 통제되었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던 연우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 가자. 근처 어디 빈 방은 있겠지."




연우는 이내 차를 몰아 간판에 불이 켜진 근처 허름한 모텔로 향했고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이내 침대에 대자로 누어 코를 골며 골아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가만히 웅크리고 침대 곁에 앉아 그냥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 와. 진짜 대책이 없다. 나와. 배고파. 밥 먹으러 가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는 아직도 00 찜질방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나를 차에 태워서는 어디론가 향했다. 낯익은 길. 산책로. 어느새 도착한 곳은 그의 집. 본가였다.


" 내려. 어서 내려."

차에서 미동도 않는 나를 기어이 끄집어 내서는 질질 끌고 그의 집으로 향하며,


" 어머니 저 왔어요. "


낮시간이면 보통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마을 회관에 모여 계실 텐데 웬일인지 연우어머니는 댁에 계셨고 나를 보더니 반가운 얼굴로


" 어머 미소양. 오랜만이에요. 이게 얼마만이야. 들어와요. "

이렇게 말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제야 내가 흐느끼기 시작해서는 엉엉 울기 소리 내 울기 시작하자,


" 아이고. 많이 힘들었나 보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는 게 아닌가. 그러며

" 잠시만 내 이럴게 아니고. 이리 와요. 조금만 기다려. 내 금방 차릴게. "


그렇게 말하시고는 후딱 올갱이 국수를 말아주셨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올갱이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허기져서 먹어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뭐랄까. 정성 가득 담긴 깊은 맛이 난다라고 할까. 그렇게 후루룩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는 고개를 들어 방긋 웃으며,


"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었어요. "


그렇게 웃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 건지 옆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던 연우가 구시렁대며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 다 큰 여자애가 말이야. 집이나 쳐 나나 가지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을 그리 애간장을... 에이.. 어머니 저 국수 좀 더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째려봤고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치자,


" 뭘 봐. 가서 얼른 씻고 옷 갈아 입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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